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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김영화 삽화 |
목표: 쫄보를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닭으로!
이유: 할아버지 생신에 잡힐 위기.
장소: 귀신의 집
남은 시간 : 7일
쫄보가 우리 집에 온 건 봄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노란 솜뭉치 같은 쫄보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어디를 가도 따라왔고, 내가 안 보이면 슬프게 울었다. 부리로 톡톡 건드리며 장난을 치거나 내 다리 위에 앉아 TV를 보기도 했다.
쫄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이제는 진짜 닭처럼 보였다. 새벽이면 어둠을 뚫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꼬끼……끼오! 어느 날은 옆집 아줌마가 시끄럽다고 투덜댔다.
“더 크기 전에 잡는 게 낫지 않아요?”
나는 깜짝 놀라 할머니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냐며 쫄보는 우리 가족이라고 말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는데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생일 때 삼계탕을 할까 봐요. 여름이니까 몸보신도 할 겸.”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떻게든 쫄보를 구해야 해.’
며칠 전 TV에서 봤던 신기한 동물들이 떠올랐다. 코로 붓을 잡고 그림 그리는 코끼리, 노래 부르는 원숭이, 두 발로 걷는 고양이.
‘쫄보도 유명해지면 괜찮을 거야.’
먼저 연습할 장소가 필요했다. 동네 아이들이 귀신의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 딱이었다. 뒷산이라 쫄보가 울어도 아무도 모를 거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쫄보를 품에 안고 살금살금 집을 나섰다.
해가 쨍쨍한데도 산속은 으슥했다. 무서웠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왜 안 오는 거야.’
시우와 귀신의 집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우는 보이지 않았다. 혼자 갈 생각을 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심장 소리가 쿵쿵 귀에 울렸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시우가 달려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엄마 몰래 나오느라.”
“야, 너부터 들어가.”
팔꿈치로 시우를 툭 쳤다.
시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낡은 대문을 밀었다. 끼이익―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문이 열렸다. 고요한 산속에 울려 퍼지는 소리. 곱슬머리가 쫙 펴지는 느낌이다.
쫄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따뜻한 체온이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그때였다. 어깨 위로 차가운 손이 스르륵 올라왔다.
“으아아악, 귀신이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쫄보가 품에서 빠져나와 뒤뚱뒤뚱 걸어갔다.
“하하. 강태산, 이 겁쟁이! 귀신이 어딨어.”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나은이가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너희 여기서 뭐 해?”
시우가 턱으로 쫄보를 가리켰다.
“얘 훈련.”
쫄보는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내 품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나은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아지도 아니고 닭을 훈련해?”
시우와 함께 준비해 온 짐들을 꺼냈다. 나은이의 입이 ‘와’하고 벌어졌다.
“뭐가 이렇게 많아?”
“쫄보가 뭘 잘할지 모르잖아. 다 해보려고.”
내 말을 듣고 나은이가 실실 웃었다.
“근데 쫄보? 닭 이름이 쫄보야? 너랑 딱인데?”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겁이 많고, 하도 나를 쫄쫄 쫓아다녀서 지어준 이름인데 하필 나은이에게 들켰다. 이제 온 동네 애들한테 소문날 게 뻔했다. 벌써 ‘쫄보, 쫄보’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일이 따로 있었다. 색종이를 펼쳐 바닥에 늘어놓았다.
시우가 물었다.
“색종이 고르는 것부터 할 거야?”
“응. 쫄보가 좋아하는 색이 있을 수도 있잖아.”
나는 쫄보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 색이 마음에 들어?”
쫄보는 답 대신 산뜻한 공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우리를 놀리듯 휙휙 피해 다녔다.
“자, 형아 따라 해봐.”
무릎을 꿇고 바닥을 짚은 채 입으로 색종이를 물어 흔들어 보였다. 쫄보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럼 장애물 달리기부터 할까?”
수수깡을 차례로 놓았다.
“이걸 뛰어넘는 거야. 알았지?”
쫄보는 수수깡을 넘어 성큼성큼 걸었다. 내가 횡단보도 흰색은 건너뛰고 검은색만 밟는 것처럼.
“옳지. 잘한……”
말을 끝내기도 전에 쫄보가 수수깡을 툭 걷어찼다.
“안 돼, 쫄보.”
모이를 주며 어르려 했지만 쫄보는 이미 졸음과 싸우고 있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기우뚱하더니 결국 내 다리를 베고 누워 버렸다.
“어휴, 오늘은 그만하자.”
나도 그대로 드러누웠다. 기대하던 첫날치고는 좀 엉망이었다.
〈훈련일기 1일째〉
시간이 없는데…… 내일은 잘할 수 있겠지?
쫄보와 연습한 지 벌써 다섯째 날이었다. 쫄보는 빨간 색종이를 가장 좋아했고 가끔은 노란색에 관심을 보였다. 몇 번만 더 하면 무조건 빨간색을 고를 것 같았다. 수수깡을 뛰어넘는 것도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아직 완벽하진 않았다.
이번엔 플라스틱 컵을 양쪽으로 길게 늘어놓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새로운 훈련을 시도했다. 쫄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컵을 뻥뻥 차며 뛰어다녔다.
“너 정말 형아 말 안 들을래?”
쫄보가 얄미우면서도 걱정스러웠다.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시우가 말했다.
“유튜브에서 춤추는 앵무새를 봤거든. 닭도 새잖아. 그게 더 쉬울지도?”
좋은 생각이었다. 쫄보는 고개를 까딱까딱 잘 흔드니까 조금만 훈련하면 춤추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음악을 틀어주면 훨씬 잘할 수도 있다.
쫄보의 날개를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이렇게 퍼덕거려 봐.”
나은이가 톡 쏘듯 말했다.
“그거 동물 학대 아냐?”
“뭐, 뭐라고?”
그 사이에 쫄보는 내 손에서 벗어나 저만치 달아났다.
“봐, 하기 싫어하는데 네가 억지로 시키는 거잖아.”
‘알지도 못하면서.’
화가 났는데 이상하게 ‘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술만 달싹거리고 있을 때 시우가 대신 나섰다.
“넌 왜 와서 시비야? 이건 쫄보 살리려고 하는 거거든.”
나은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할머니한테 솔직하게 말해. 그냥 부탁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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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김영화 삽화 |
꼬꽥끼.
평소와 조금 다른 소리였다. 뒤돌아보니 쫄보가 가시덤불 사이에 갇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그러다 다쳐.”
쫄보를 달래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다리에 긁힌 자국이 선명했고, 따가운지 자꾸 몸을 움찔거렸다.
〈훈련일기 5일째〉
쫄보가 다쳤다. 정말 내가 괴롭히는 걸까?
나은이 말이 맞다. 겁쟁이는 쫄보가 아니라 나였다.
이튿날 시우가 우리 집으로 왔다.
“쫄보는 괜찮아? 훈련하러 안 가?”
어제 발라준 약이 잘 맞았나 보다. 쫄보는 다시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다행이었지만 마음 한쪽은 조급해졌다. 당장 내일이 할아버지 생신인데, 쫄보를 계속 훈련시켜야 할지 그만두어야 할지 망설임이 커졌다.
‘이젠 정말 이 방법밖에 없어.’
가족사진을 쫄보에게 들이밀었다.
“잘 봐. 할아버지, 할머니가 널 잡으러 오면 무조건 도망가야 해.”
쫄보는 내 말보다 팔랑거리며 날아오른 나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간신히 사진을 보여줬지만, 이번에는 바닥에서 꿈틀대는 지렁이를 쪼아댔다.
“시우야, 쫄보 오늘 너희 집 닭장에 두면 안 돼?”
어딘가에 숨겨야 했다. 내가 깨기도 전에 할머니 손에 잡히면 끝이니까.
혹시라도 누가 볼까 봐 두 팔로 쫄보를 감싸안고 시우네 집으로 갔다. 닭이 이렇게 많으니 쫄보 하나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다. 조심조심 닭장 문을 열려는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옆집 아줌마였다.
“너희들, 거기서 뭐 하니?”
꼬……꼬끼.
‘지금 울면 안 돼.’
재빨리 쫄보의 부리를 막고 시우에게 속삭였다.
“야, 뛰어.”
우리는 뒷산을 향해 냅다 달렸다.
어느새 해가 꼴깍 넘어가고 있었다. 산길은 동네보다 훨씬 더 어두웠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누군가 뒤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돌아보았다.
천천히 귀신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마룻바닥이 삐거덕 소리를 냈다. 처음엔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문틈으로 달빛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더듬더듬 그릇에 물을 담고 모이를 놓았다. 쫄보만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서워서 밤새 울면 어쩌지.’
그래도 집에 데려갈 순 없었다.
“조금만 참아. 눈 뜨자마자 올게.”
쫄보가 또랑또랑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 말을 다 이해한다는 듯 조그맣게 고개까지 끄덕였다. 얌전한 쫄보를 보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얼른 방문을 닫고 나왔다.
겨우 아침이 밝았다. 신발을 구겨 신은 채 뛰쳐나갔다. 쫄보한테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닭이 없어요! 어쩐지 새벽에 조용하다 했더니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요.”
“어허, 요즘 제법 잘 날아다닌다 싶더니만.”
“혹시 밤에 너구리나 고양이가 잡아간 건 아니겠죠?”
숨이 턱 막혔다. 산짐승들이 쫄보를 해칠지도 모른다.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귀신의 집으로 달려갔다.
쫄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눈을 꽉 감은 채 살며시 방문을 열었다. 쫄보가 나에게 달려와 주길 바랐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겨우 실눈을 뜨고 봤다. 어디에도 없었다.
‘외로워서 마을로 내려왔을지도 몰라.’
온 동네 닭장을 뒤지고 또 뒤졌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 헤매다 집으로 돌아왔다.
꼬끼오!
우렁찬 쫄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이 담을 넘어갔던 모양이야. 문 앞에 서 있지 뭐냐.”
‘이 바보, 할아버지를 보면 도망치라고 했잖아.’
팔을 활짝 벌리자 쫄보가 날개를 펼치고 뛰어올랐다. 작은 몸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눈이 따끔거렸다. 쫄보가 살포시 내 어깨에 기댔다.
퍼뜩 오늘이 할아버지 생신이란 게 생각났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쫄보가 얼마나 똑똑한지 보세요.”
색종이를 마당에 흩뿌렸다.
“빨간 색종이 골라봐. 빨간색.”
쫄보는 색종이 위를 통통대며 뛰어다녔다.
“아니, 이건 수수깡이 아니잖아.”
허둥지둥 수수깡을 늘어놓았다.
“이 위로 뛰는 거야.”
쫄보는 수수깡을 물고 장난스럽게 머리를 까딱였다.
“다 잊어버린 거야? 왜 하나도 못 해? 우리 연습 많이 했잖아.”
아무리 재촉해도 쫄보는 귀찮은지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할아버지는 힐끗 나를 쳐다보더니 쫄보에게 걸어갔다.
“안돼, 할아버지. 가지 마. 쫄보 먹지 말라고.”
할아버지 바지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쫄보랑 헤어지기 싫다고요.”
할아버지는 나를 번쩍 일으켜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었다.
“우리 태산이가 쫄보한테 정이 많이 들었구나.”
어느새 나온 쫄보도 똘망똘망하게 눈을 빛내며 할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쫄보랑 계속 같이 살아도 되는 거죠?”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쫄보의 머리도 톡톡 두드려주었다. 나는 쫄보를 꽉 껴안았다. 쫄보가 답답해서 낑낑거렸지만 더 꼭 끌어안았다.
살랑 바람이 땀에 젖은 머리를 식혀 주었다. 마당 위로 나무 그늘이 길게 드리웠다.
쫄보야, TV 스타가 아니어도 돼. 그냥 너라서 좋아.
훈련 끝.
2026.01.02 (금) 0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