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벼 깨씨무늬병 예방의 시작은 논 토양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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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벼 깨씨무늬병 예방의 시작은 논 토양관리

박인구 전남농업기술원 기술보급과장

박인구 전남농업기술원 기술보급과장
벼농사를 짓는 농업인이라면 한 번쯤 “올해는 병이 유난히 심하다”, “약을 제때 쳤는데도 효과가 없다”는 말을 해봤을 것이다. 특히 깨씨무늬병은 해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해 농가의 걱정을 키우는 병해 중 하나다. 깨씨무늬병은 벼 생육 중·후기에 잎과 줄기에 병반이 나타나 광합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수량과 미질 저하로 이어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잎에 점처럼 나타나는 병이지만, 실제 피해는 생각보다 크다. 문제는 병이 눈에 보일 때쯤이면 이미 벼의 체력이 약해져 방제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깨씨무늬병은 ‘약으로 잡는 병’이 아니라 ‘미리 막아야 하는 병’이라고 말한다.

깨씨무늬병 발생의 원인을 살펴보면 단순히 병원균 때문만은 아니다. 토양 상태, 시비 습관, 재배 관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토양의 지력이 떨어진 논, 유기물이 부족한 논, 질소 위주의 시비가 반복된 논에서 병 발생이 심하게 나타난다. 실제 현장에서도 오래 경작해 힘이 빠진 논이나, 볏짚 환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논에서 깨씨무늬병이 집중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결국 벼가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는 신호다. 벼가 약하면 병이 쉽게 들고, 병이 들면 회복도 어렵다. 따라서 깨씨무늬병 관리의 출발점은 약제가 아니라 논 토양을 살피는 일이다.

사전 관리의 첫 단계는 토양 지력 회복이다. 사질토이거나 오랜 기간 경작해 힘이 빠진 논은 객토와 함께 유기물 투입이 필요하다. 볏짚 환원, 퇴비 투입, 토양개량제 활용은 토양의 물리성과 화학성을 동시에 개선해 준다. 유기물이 늘어나면 토양이 부드러워지고 양분 보유력이 높아져 벼 뿌리가 깊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뿌리가 건강해야 벼 전체의 생육도 안정되고, 병에 대한 저항성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이런 토양에서는 병 발생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한 번에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이어가는 관리다.

비료 관리 역시 매우 중요하다. 벼농사에서 질소 비료는 수량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지만, 과다 사용하면 벼 조직이 연약해지고 병에 취약해진다. 웃자란 벼는 쓰러지기 쉽고, 병해에도 약하다. 토양검정을 통해 논의 양분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결과에 맞춰 비료를 주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특히 규산질 비료는 벼 조직을 단단하게 만들어 병에 대한 저항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3년 1주기 시용 원칙에 따라 공동 살포를 지속하면 깨씨무늬병 예방뿐만 아니라 도복 감소와 미질 개선 효과도 함께 기대할 수 있다.

재배 과정에서의 관리도 사전 관리의 연장선이다. 보급종을 사용하고 종자 소독을 철저히 하는 것은 종자 전염을 막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초기 관리가 소홀하면 생육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생육 중에는 중간 물떼기 등 물 관리를 통해 논의 통기성을 개선하고, 벼가 과도하게 웃자라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병 발생 시기를 고려해 약제를 적기에 살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다. 핵심은 병이 생기지 않거나, 생기더라도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논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

논 토양관리는 깨씨무늬병 예방이라는 목적을 넘어 더 큰 효과를 가져온다. 토양이 건강해지면 벼 생육이 전반적으로 안정되고, 수량과 품질이 함께 좋아진다. 농가 입장에서는 약제 사용 횟수와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작업 부담도 덜 수 있다. 여기에 유기물 투입과 적정 경운은 토양 탄소 저장을 늘려 탄소 감축에도 기여한다. 즉, 논 토양관리는 병 예방, 소득 안정, 환경 보전이라는 세 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농사 기술이다.

이제 농사는 경험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기후변화와 재배 환경 변화 속에서 병해 발생 양상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 병이 생길 때마다 약을 늘리는 농사에서 벗어나, 토양을 살피고 벼의 체력을 키우는 농사로 전환해야 한다. 벼 깨씨무늬병 사전 관리와 논 토양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앞으로의 벼농사를 위한 기본 전략이다. 올 한 해 농사를 준비하며, 논 한 필지 한 필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자. 병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나 건강한 토양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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