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촌 마지막 버팀목, 농협을 다시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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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촌 마지막 버팀목, 농협을 다시 생각하다

정성욱 목포농협 용해지점장

정성욱 목포농협 용해지점장
“농협이 진짜 문제예요. 맨날 구속되고 수사하고 난리던데….”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에게 정책 추진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취지로 진행한 ‘12일간 생중계한 업무보고’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 과정 중 나온 이 한마디는 농협이라는 조직에 몸담고 있는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속에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농협을 바라보는 인식이 짙게 담겨 있었다. 단순한 즉흥적 발언이 아니라, 반복된 뉴스와 사건, 그리고 누적된 실망이 만들어낸 인식의 단면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평가의 대상이 내가 30년 넘게 몸담아 온 조직이라는 사실은, 농협인으로서 쉽게 넘길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 농업인 아버지 밑에서 배운 것은 자연과의 싸움 속에서도 함께 버티는 공동체의 힘이었다. 농번기에는 자금 걱정을 덜어주고, 어려운 시기에는 가장 먼저 손을 내밀던 존재가 농협이었다. 그런 경험이 나를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의 길로 이끌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농협인’, ‘협동조합’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설렌다. 조합원과 함께 웃고 울며, 농업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지탱해 주고 있다는 자부심은 여전히 나를 이 자리에 서 있게 하는 힘이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협은 늘 개혁의 대상으로 거론된다. 때로는 농업과 농촌의 모든 문제가 농협에 기인한 것처럼 비춰질 때도 있다. 물론 농협 내부의 문제와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일부 임직원의 일탈, 권한의 집중, 시대 변화에 뒤처진 의사결정 구조는 분명히 비판받아야 하고, 고쳐져야 할 과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싶다. 과연 농협의 문제를 농협 내부의 도덕성이나 의지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다.

농협의 운영 문제는 조직 내부만의 문제로 단순화할 수 없다. 농협은 늘 개혁의 대상이었지만, 그를 둘러싼 법·제도와 정책은 상대적으로 논의의 외곽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농협은 ‘농업협동조합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된다. 이 법은 농협의 주인인 조합원뿐 아니라, 농협을 이용하는 소비자, 더 나아가 농협의 구성원이 아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에 의해 제·개정돼 왔다.

농협의 구조와 권한, 역할은 이미 법과 제도 속에서 규정돼 있음에도, 정작 그 제도 자체에 대한 성찰과 책임 논의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농협은 늘 개혁의 대상이었지만, 그를 둘러싼 법·제도와 정책은 상대적으로 논의의 외곽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농업과 농촌의 현실은 ‘위기’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이미 구조적 문제가 됐고, 기후위기와 국제 곡물 시장의 불안정성은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농업이 ‘미래가 없는 산업’으로 인식되는 현실 속에서, 농협은 단순한 금융기관이나 유통조직이 아니라 농촌 공동체의 마지막 버팀목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필자도 이제 농협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조합원 중심의 협동조합 정체성을 분명히 회복해야 한다. 모든 의사결정은 ‘이 결정이 조합원의 삶에 어떤 힘이 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잃는 순간, 농협은 존재 기반을 잃는다.

둘째, 투명성과 책임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작은 일탈이 조직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차례 경험했다. 스스로를 가장 엄격하게 통제하고, 잘못 앞에서 가장 먼저 고개 숙일 수 있을 때에만 농협은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셋째, 청년 농업인과 미래 농업에 대한 투자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농업이 다시 ‘꿈이 있는 산업’으로 자리 잡지 못한다면 농촌의 내일은 없다. 금융과 유통, 교육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농업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도전할 가치가 있는 산업으로 다시 설 수 있다.

넷째, 중앙과 지역, 조직과 현장 사이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회의실의 판단보다 들판의 목소리가 우선돼야 한다. 현장의 절박함이 형식적인 보고서가 아니라 실제 정책과 사업으로 이어질 때, 농협은 비로소 살아 있는 조직이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투명한 국정 운영’과 ‘현장의 목소리’는 농협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가치다. 농협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개혁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때, 국민의 시선도 서서히 달라질 것이다.

31년 동안 농협인으로 살아오며 나는 수많은 변화의 순간을 지켜봤다. 때로는 비판이 아프고 억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는 묵묵히 땀 흘리는 조합원들이 있었고, 이름 없이 책임을 다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농협은 지금까지 버텨왔고, 그렇기에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농협은 아직 희망이라고. 농협이 스스로 개혁의 주체로 서는 순간, 농업과 농촌의 미래 역시 다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설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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