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전화 한 통, 평온한 일상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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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전화 한 통, 평온한 일상 무너뜨린다"

[1] 보이스피싱 범죄 실태와 심각성
광주·전남 전역서 피해…학교·관공서까지 침투
겨울방학·공사철 노린 ‘선결제 요구’ 수법 확산
AI 음성기술 등 악용 고도화…‘노쇼사기’도 속출

보이스피싱 범죄가 해마다 진화하며 광주·전남 지역사회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

학교와 관공서, 공기업까지 사칭하는 수법이 확산하며 피해 대상과 규모도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특정 유명인이나 공공기관 직원 등을 사칭해 음식, 제품을 단체주문한 뒤 연락을 끊거나 대리구매 명목으로 돈을 가로채는 ‘노쇼사기’가 극에 달하면서 관련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의 심각성에 비해 피해 이후의 대응과 제도적 보호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보이스피싱 범죄의 실태와 심각성, 피해자의 정신적·경제적 이중고, 제도의 한계와 개선 과제를 등을 차례로 짚어본다. <편집자 주>



연초부터 광주·전남 지역에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겨울방학을 맞아 학교 공사와 관련된 물품 구매, 관급 계약이 늘어나는 시기를 노린 학교·관공서 관계자 사칭 범죄가 잇따르면서 수천만원대 피해까지 발생하고 있다. 기존의 대출 사기나 금융기관 사칭을 넘어 공공기관과 교육 현장을 정조준한 범죄가 확산하면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한층 조직화·고도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2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후 4시께 전남 나주의 한 고등학교 관계자를 사칭한 인물이 지역 건설업체 대표에게 접근해 안전용품 구입비 명목으로 6000만원을 요구했다.

해당 업체는 과거 이 학교의 재난 피해 보강공사를 맡았던 이력이 있어 별다른 의심 없이 범인이 알려준 계좌로 돈을 송금했다. 그러나 이후 학교 측에 입금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보이스피싱 범죄로 드러났다.

같은 날 오전에도 지역 교복업체 대표가 고등학교 교직원을 사칭한 인물로부터 공기청정기 대금 송금을 요구받았다.

이 업체는 즉시 학교에 사실 여부를 확인해 추가 피해를 막았지만, 경찰은 실제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컸던 사례로 보고 있다. 학교 공사와 물품 구매가 잦은 방학 기간을 노린 범죄 수법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 같은 범죄는 학교에 국한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관공서와 공기업을 사칭한 계약·물품 대금 사기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여수광양항만공사 직원을 사칭한 일당은 가짜 명함과 이메일을 제시하며 물품 납품 계약을 빌미로 1000만원 상당의 검수용 기념물품 제공을 요구했다. 과거 유사 사례를 경험했던 해당 업체는 명함과 이메일 주소의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공사 측에 문의해 피해를 면했다.

항만공사 사칭 범죄는 지난 2025년 10월에도 발생한 바 있다. 당시 공사는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물품 계약이나 금전 요구가 있을 경우 반드시 공식 창구를 통해 확인해 달라”는 안내문을 배포하며 주의를 당부했다. 그러나 범죄 조직은 이를 비웃듯 보다 정교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수시청 공무원을 사칭한 사례도 확인됐다. 지난해 11월께 ‘2025 불꽃축제 설문조사 음료’라는 제목의 허위 공문이 지역 업체들에 발송됐다.

해당 공문에는 불꽃축제 설문조사에 참여한 시민에게 제공할 음료 구입 예산을 승인한다는 내용이 담겼으며, 부서명과 결재 라인, 담당자 직함은 물론 여수시장 직인까지 정교하게 위조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한 업체는 시에서 축제에 쓸 음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속아 음료수 구매 명목으로 60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범죄조직이 예산 처리를 약속한 뒤 대리 구매를 요청해 돈을 보내면 가로챈 것으로 판단, 해당 위조공문서를 공개해 주의를 당부했다.

앞서 지난해 6월과 8월에는 광양시청 회계과 공무원을 사칭한 인물의 물품 대납 요청에 속아 5500만원 상당의 결제 피해를 입은 지역 스포츠용품 업체 사례도 발생했다. 경찰은 이들 사건 모두 조직적인 보이스피싱 범죄와 연관돼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러한 범행은 광주에서도 확인됐다.

지난해 광주시는 가짜 명함이나 공무원증, 위조된 공문서 등을 제시하며 민간업체를 상대로 물품 구매를 유도하거나 물품 납품계약을 시도한 사례를 발견,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범행에 사용된 문서에는 시장 직인은 물론 ‘25년도 하반기 광주시 어르신 장수사진 촬영’이라는 구체적인 사업 명칭이 적시됐다. 문서번호, 담당부서, 담당자 이름 등도 포함됐다.

심지어 ‘발주기관과 제조사·구매사가 구매자에게 물품 공급을 원활하게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물품 구매에 대해 상호 신의성실 원칙에 근거해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준수하기로 확약한다’ 등의 실제 확약서에 쓰이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 제품 결제 금액(880만원)과 카드결제, 결제일을 지정, 차질없이 물품 구매를 준비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공개된 또 다른 위조문서 역시 비슷한 내용이었다. 30만원 상당의 컬러페인트를 구매하겠다는 확약서에는 ‘해당 문서를 임의로 사용하거나 전달하는 경우 부득이하게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고 적시됐다.

문제는 이러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단발성이 아니라 해마다 규모와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는 474건으로. 피해액은 279억원에 달했다. 검거된 보이스피싱 조직은 705명(2024년 549명)에 달했다.

세부적으로 광주의 경우 2024년 436건에서 474건으로 38건이 증가했으며 피해액도 205억원에서 279억원으로 늘었다. 전남에서는 범죄 건수가 491건에서 574건으로 83건 뛰었으며, 피해액도 202억원에서 290억원으로 88억원이 증가했다.

경찰은 신고되지 않은 피해까지 고려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통계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들의 연령대와 직군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금융기관 사칭 범죄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학교·관공서·공기업과 실제 거래 이력이 있는 자영업자와 중소업체 대표들이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60대 이상 고령층의 경우 비교적 자산 규모가 크고 정보기술 기반 범죄에 취약한 점이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범죄 수법의 진화도 심각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경찰은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이 전화뿐 아니라 문자, 모바일 메신저, 이메일은 물론 인공지능(AI) 음성 기술까지 활용하며 범죄를 고도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상급자나 기관 관계자의 목소리를 흉내 낸 AI 음성을 이용해 신뢰를 유도하는 사례가 전국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급기야 보이스피싱에 허위 전화주문(노쇼)을 결합한 이른바 ‘노쇼 사기’ 범죄도 속출하고 있다. 이는 공공기관이나 단체 등을 사칭해 업체에 대량 주문이나 예약을 한 뒤 대리구매를 유도해 돈을 송금받고 잠적하는 수법이다.

실제로 지난 2025년 1~7월 광주·전남지역에서 총 322건(광주 190건·전남 132건)의 노쇼 사기가 발생했다. 이로 인한 피해 금액은 55억여원(광주 36억9690만원·전남 18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일상 깊숙이 파고들면서 이제 문제는 ‘누가 당하느냐’가 아니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노출되느냐’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이처럼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가 속출함에 따라 광주경찰청은 2025년 9월부터 스마트폰 기반 피싱·사기 범죄를 집중적으로 수사할 ‘피싱수사계’를 운용, 범죄 척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대학생 납치·살해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대대적인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 단속에 나서면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주춤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초부터 이어지는 광주·전남 지역의 잇단 사례는 보이스피싱이 더 이상 일부 취약계층만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는 단순히 전화를 걸어 겁을 주는 수준을 넘어 실제 계약 구조와 행정 절차를 꿰뚫고 접근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며 “학교나 관공서를 사칭해 선결제를 요구하는 경우 대부분 보이스피싱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범죄 조직은 계속해서 새로운 수법을 만들어내고 있어 개인의 주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공식 대표번호 확인, 기관 직접 문의 등 기본적인 확인 절차가 피해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임영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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