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개인을 넘어 한 사회가 공유하는 상징과 정서를 ‘집단무의식’이라 정의했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다. 전쟁의 상흔, 급격한 산업화, 외환위기의 충격을 차례로 통과하며 우리에게 집은 안전의 원형이 됐다. 소유는 곧 생존이었고, 부동산 상승은 곧 존엄의 회복으로 치환될 수 있었다.
내 집을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지붕을 얻는 일이 아니라, 이 불안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자리’ 혹은 ‘뿌리’를 확보하는 필사적인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집값의 등락은 자산의 변동이 아니라 자아 안정의 흔들림으로 체감된다. 정부의 규제는 정책적 조정이 아니라 내 삶의 유일한 보호막에 균열을 내는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주택을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거주의 기반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는 경제정책인 동시에, 우리 마음속에 박힌 ‘안전=부동산’이라는 상징을 전환하려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 등식은 쉽게 해체되지 않는다. 무의식은 논리보다 경험에 의해 형성되고, 그만큼 굳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부동산을 거주의 기반으로 온전히 바꿔내려는 제대로 된 시도조차 드물었기에, 우리는 더욱 부동산에 매달려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부동산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에서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을까?
심리학적으로 안정감은 예측 가능성과 통제감에서 비롯된다. 내일이 오늘과 완전히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나의 노력과 결과가 정당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사람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안정된 고용, 신뢰할 수 있는 연금과 의료, 그리고 과도한 경쟁에 잠식되지 않는 교육 구조는 개인의 미래 불안을 낮춘다. 안전이 제도 속에 분산될 때, 사람들은 특정 자산 하나에 운명을 걸지 않고 올인하지 않으며, 삶에 여유가 생긴다.
한국 사회에서 그 구체적인 대안은 다음 세 방향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첫째, 일의 안정성과 직업 정체성의 회복이다. 일이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사회적 인정의 통로가 될 때, 우리의 자존감은 집값이 아니라 직업적·사회적인 나의 역할에서 형성된다.
둘째, 공정성에 대한 신뢰다. 노력과 보상이 연결된다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으면 사람들은 ‘단번의 도약’을 노리는 투기 대신 ‘지속 가능한 과정’을 선택하게 된다.
셋째, 관계와 공동체의 복원이다. 연결된 개인은 고립된 개인보다 불안에 덜 휘둘리며, 공동체적 지지는 그 자체로 강력한 심리적 완충지대가 된다.
결국 부동산 문제의 핵심에는 “안전에 대한 갈망”이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집을 통해 안전을 사려 했다. 그러나 심리적 안정은 반드시 소유에서만 오지 않는다. 제도적 신뢰, 예측 가능한 삶의 구조,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망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 집단무의식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의 정체를 의식하는 순간, 상징은 조금씩 이동한다.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 진정한 지도자의 출현을 기다리는 마음도 결국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이제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집을 가졌는가?”라는 질문 대신 “나는 안전한가?”라고 말이다. 그 질문의 전환이야말로 정책을 넘어 우리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시작이다.
2026.03.10 (화) 1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