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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항원 광주 광산구의회 팀장·노무현재단 총동문회 기획이사 |
노무현 대통령은 생전에 “역사는 더디지만 진보한다”고 믿었다. 그 진보의 동력은 바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었다. 1980년 5월 광주는 그 힘이 무엇인지를 역사의 현장에서 가장 먼저 증명했다.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은 주먹밥을 나누고 치안을 유지하며 공동체 자치의 전형을 보여줬다.
이는 단순히 누군가의 명령에 따르는 신민(臣民)이 아니라,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시민’의 탄생을 알리는 거대한 선언이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공기는 바로 그날, 깨어있던 시민들이 흘린 피와 눈물에 깊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1980년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우리 세대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노무현 대통령은 청년들을 향해 “부당한 권력에 맞서고,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다”고 역설했다. 80년의 청년들이 금남로에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자신들의 안위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자유로운 미래였다.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오늘날의 5·18 정신은 박제된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자세’로 치환돼야 한다.
먼저, 우리 세대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꿈꾼 세상은 거창한 혁명의 완성이 아니라,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사회의 중추가 된 우리는 직장 내 부조리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동료를 존중하는 포용력, 그리고 편법과 반칙을 거부하고 정직한 땀의 가치를 믿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정에서는 권위적인 부모가 아닌 대화하는 파트너가 되고, 지역사회에서는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은 ‘선한 연대자’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80년 광주가 보여준 공동체 정신을 오늘날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또 우리는 ‘지식과 양심의 결합’을 실천하는 지성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뇌하며 자신의 확신을 행동으로 옮긴 정치인이다. 현대 사회의 청년들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5월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실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어떤 불평등과 연결되는지 성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혐오와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비판적 사고를 견지하고 소외된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며, 우리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태도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이 가져야 할 실천적 양심이다.
나아가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나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잘사는 세상’을 고민하는 것이다. 취업과 육아, 주거 문제 등 현실의 벽은 높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각자도생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80년 광주 시민들이 총칼 앞에서도 주먹밥 하나를 나눠 먹었던 그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지역주의와 정파적 갈등이라는 해묵은 장벽을 허물고, 보편적 인권과 정의라는 기치 아래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태도가 절실하다. 비겁하게 침묵해 기득권의 편에 서기보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정의의 편에 서고자 했던 노무현의 ‘바보 정신’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지표다.
결국 광주가 가야 할 길과 노무현이 가고자 했던 길은 ‘통합’이라는 커다란 바다에서 만난다.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벽을 허물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도전했다. 5·18 또한 오랫동안 특정 지역의 아픔으로만 갇혀 있다. 하지만 이제 광주는 지역과 세대를 넘어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 아래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대통합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바람 불면 바람에 맞서며 뚜벅뚜벅 걸어갔던 그 발걸음처럼, 우리 세대도 지역과 정파를 떠나 5월의 진실을 온전히 포용하고 서로에게 화해와 상생의 손길을 내밀며 살아가야 한다.
오월이면 늘 죄스러운 마음으로 마주하는 영령들과 여전히 사무치게 그리운 노무현 대통령께 깊은 추모의 마음을 올린다. 이제 우리는 그 미안함과 그리움을 등불 삼아 정의로운 세상을 향해 다시금 뚜벅뚜벅 함께 나아가야 한다.
조항원 gn@gwangnam.co.kr 조항원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5.18 (월) 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