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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욱 목포농협 용해지점장 |
현재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는 100개국 이상의 국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전 세계 협동조합 조합원은 약 10억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AP통신과 썬키스트,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 등도 협동조합 정신을 바탕으로 성장한 대표적 사례다. 협동조합은 결코 낡은 제도가 아니라 세계가 인정한 지속가능한 경제 모델이다.
우리나라 역시 농협, 수협, 신협 등 전통적 협동조합 체계에 더해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일반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이 가파르게 증가하며 한국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이 됐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이 곧 성공을 의미하진 않는다. 조합원의 참여, 민주적 운영, 지역사회 기여라는 본래의 가치가 살아 있을 때 비로소 협동조합은 존재 의미를 갖는다.
그 중심에 농협이 있다. 농협은 단순한 금융기관이나 유통회사가 아니다. 농협은 농민의 삶을 수호하고 농촌 공동체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개별 농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구매와 판매를 공동화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비료·농약·종자·사료·농기계 등 영농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농산물 유통망을 구축하고 금융서비스를 통해 농업인의 경영안정을 돕는다. 거대 자본과 시장 논리 앞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농민에게 농협은 지금도 가장 현실적인 힘이다.
하지만 오늘날 농촌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농촌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청년층의 이탈은 계속되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폭우와 가뭄, 냉해와 병충해는 농민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농협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조합·중앙회·계열사를 감시하는 별도의 감사기구 설치, 농림축산식품부의 지도·감독 확대, 정보공개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농협이 국민경제와 농업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자는 요구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변화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30여년 농협 현장에서 조직의 명암을 지켜본 필자는 애정 어린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농협에 필요한 것은 농협을 흔드는 개혁이 아니라 농협을 농협답게 만드는 개혁이다. 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 변화가 농협의 뿌리까지 흔들어서는 안 된다.
감사 기능 강화는 실질적인 견제 장치가 돼야 한다.
내부 감사만으로는 비대해진 조직 구조를 감당하기에 한계가 있다. 외부 전문가와 조합원 대표가 참여하는 독립적 감시체계는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또 다른 ‘낙하산 인사’의 통로나 옥상옥(屋上屋) 식의 조직 비대화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감사기구는 정치적 외풍이 아닌 법률과 원칙에 따라 운영돼야 하며, 철저히 조합원에게 직접 책임지는 구조여야 한다.
정부의 감독 확대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농협은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일정 수준의 감독은 필요하다. 특히 정책자금 운용, 공적 지원사업, 금융 건전성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엄정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농협은 정부 기관이 아니라 조합원이 주인인 민간 협동조합이다. 지나친 행정 개입은 자율성과 민주성을 훼손할 수 있다. 감독이 통제로 변질되는 순간 농협은 조합원의 조직이 아니라 관료조직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정부는 세세한 경영 간섭보다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사후 평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정보공개 확대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조합원과 국민은 농협의 경영 상태와 주요 투자 현황을 알 권리가 있다. 신뢰는 투명한 공개에서 싹튼다. 다만 지역농협까지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면 현장의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규모와 여건을 고려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정보공개가 처벌을 위한 칼날이 아니라, 소통과 신뢰를 위한 교량 역할을 하도록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
진정한 개혁은 제도 몇 줄 바꾸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지금 일부의 잘못을 조직 전체의 본질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수많은 농협 임직원들은 새벽 공판장에서, 재해 현장에서, 금융 창구에서 묵묵히 농민 곁을 지키고 있다. 태풍이 오면 가장 먼저 농촌으로 달려가고, 폭설이 내리면 비닐하우스를 함께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투명성은 높이되 자율성은 지키며 조합원 주권은 더욱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감독하되 지배하지 말아야 하며, 농협은 자율을 누리되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균형 위에서만 진정한 개혁은 완성될 수 있다.
농협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바로 농민과 지역사회, 그리고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 초심을 잃지 않을 때 농협은 다시금 국민의 신뢰를 받을 것이며, 우리 농촌의 내일 또한 다시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성욱 gn@gwangnam.co.kr
정성욱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5.26 (화) 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