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들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명박·박근혜 두 정부에 걸쳐 출산율 상승에 들어간 예산만 10조원이 넘는다. 그러나 10년째 출산율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만 더 나빠졌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젊은 층들의 ‘출산 파업’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비난하려 들기도 한다. 요즘 한창 TV 프로그램들을 통해 소개되는 딩크족이나 욜로족과 같이 공동체보다 자신의 삶을 더 우선시하는 젊은이들의 풍조 때문에 정부의 노력에도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젊은이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대체 언제부터 한국이 저출산 국가가 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이던 70년대 중·후반만 해도 국가에서 출산을 억제하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TV에서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공익광고를 방송했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가 관공서마다 붙어 있기도 했다. 불과 30~40년 전, 그러니까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한국이 이렇게 심각한 저출산 국가로 변모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이 저출산 국가의 길로 접어든 것은 1997년 IMF 사태를 겪고 나서부터이다. IMF사태가 한국사회에 미친 여러 가지 영향 중에서도 가장 심각했던 것은 결국 사회공동체의 붕괴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를 지켜주고 지지해주는 공동체가 이제는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 한발자국만 잘못 내딛어도 바로 벼랑 끝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인식이 한국사회를 휩쓸었다. 이러한 사회공동체의 붕괴는 IMF사태로부터 시작되어 2008년 외환위기를 정점으로 우리 사회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행복하지 않는 사회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2006년 1.12명으로 최저점을 찍었던 출산율은, 2012년에 그나마 1.3명으로 반등한 이래 지금껏 10년 넘게 1.1대~1.2대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늙은 부모를 모시는 일 역시 당연한 것이 아니라 힘겹고 버거운 일이 되어 버렸다. 노인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거의 없다시피 한 우리 사회에서, 노인 빈곤은 저출산만큼이나 큰 문제이다. 아니, 필자의 생각으로는 노인빈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며, 어쩌면 저출산을 가져오는 가장 큰 원인인지도 모른다. 2016년 조사 결과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8%다. 놀랍지 않은가! 노인 2명 중 1명이 빈곤에 시달린다는 사실이다. 지금 한국의 노인들은 자식으로부터 부양받지도 못하고, 사회로부터도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이렇게 저출산 기조가 20년 가까이 지속되는 데도 한국의 인구수는 줄어드는 게 아니라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추세대로 저출산이 지속되더라도 대한민국의 인구수가 줄기 시작하는 것은 2030년부터, 즉 앞으로도 12년이나 더 지나야 한다. 왜 그럴까? 베이비부머 세대가 아직까지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60~70년대에 급격하게 늘어난 인구수가 아직도 한국의 인구를 버텨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베이비부머 세대들 중 거의 절반이 노인이 되었으며, 나머지 절반이 앞으로 12년 사이에 노인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12년 사이에 노인 빈곤율은 더 올라갈 것이고, 출산율은 더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점점 더 사람 살기 어려운 나라, 행복하게 살기 어려운 나라로 변해갈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에 가장 먼저 필요한 정책이 바로 노인복지에 힘을 쏟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노인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를 이만큼 성장시키고 이 자리에 올려놓은 세대에 대한 보상이, 우리사회에서는 터무니없을 만큼 부족하다. 아직도 노인을 봉양하는 일이 온전히 가정이나 자식세대에만 지워진 짐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전근대적인 발상이야말로 한국을 불행한 나라로 만드는 잘못된 편견이다. 70세 넘은 할머니가 폐지가 잔뜩 쌓인 리어커를 힘겹게 끌고 가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나라에서, 젊은이들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나의 미래, 나의 노년도 저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래가 두려운 젊은이들이 과연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겠는가. 무너진 사회공동체의 회복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인 노인들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실패한 출산율 올리기에 쏟아 부은 예산의 절반만 노인복지 예산으로 활용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노년층 삶의 질은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보며 젊은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우리 사회는 나이 들고 살아가는 데에 안전한 곳이구나.’ 이런 인식의 전환이 가능해지면 자연스레 결혼과 출산율도 올라갈 것이라 믿는다. 출산장려보다는 노인복지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첫걸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