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국 통합기관과 한국 특별지방자치단체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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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국 통합기관과 한국 특별지방자치단체의 미래

이진 광주시의회 운영수석전문위원

이진 광주시의회 운영수석전문위원
한국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추구하며 ‘자치와 분권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과 심각한 지역 불균형, 지방 소멸의 위기에 직면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행정구역 경계에 갇힌 채, 인구 감소와 산업 쇠퇴, 교통 및 환경 문제 등 광역적인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 정부간 협력 모델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영국 ‘통합기관(Combined Authorities)’ 모델은 한국 지방자치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영국 통합기관의 탄생과 역할을 살펴보자. 영국 지방정부는 수백 년 동안 이어온 행정구역의 전통은 경직성으로 나타났고 지방정부 위기를 초래했다. 교통, 주택, 경제 개발 등 광역적 문제에 개별 지방정부들이 각각 대응하면서 중복 투자와 비효율이 발생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자 영국정부는 ‘지방 민주주의, 경제 개발 및 건설법(2009)’을 제정해 ‘통합기관’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도시 및 지방정부 권한 이양법(2016)’을 제정했다. 통합기관에 도시계획, 치안 등 더 넓은 범위의 권한이 부여했고 통합기관장(Mayor) 주민직선제를 도입했다. 통합기관장의 리더십과 민주적 정당성이 강화됐다.

통합기관은 2개 이상의 지방정부가 연합하여 특정 사무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법인이다. 단순히 지방의회 간의 협의체를 넘어, 법적 권한과 예산 집행 권한을 가진 강력한 거버넌스 모델이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바로 그레이터 맨체스터 통합기관(GMCA/2011)이다. GMCA는 잉글랜드 북서부에 위치한 10개 지방정부의 연합체이다. 개별 자치권을 유지하면서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설립됐다. 교통, 주택, 경찰, 소방, 경제 개발 등 지역 핵심 과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했다. 특히 ‘맨체스터의 비전’을 바탕으로 ①대중교통 시스템을 통합하고, 버스 네트워크를 재정비해 교통혁신을 이뤘다. ②통합된 주택계획 수립 권한을 활용해 주택을 공급하며 도심 재생을 추진했다.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였다. ③일자리 창출에 큰 성과를 냈다. 지역 경제 성장 전략을 주도하며, 혁신 산업을 육성하고 대규모 투자 유치를 이끌었다.

주민 직선 통합기관장은 중앙정부와의 협상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적 구심점이다. GMCA는 개별 지방자치단체가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들을 통합적인 시각에서 해결하며, 행정이 정했던 경계를 넘어 지역의 장기적인 비전을 실현하는 강력한 플랫폼 역할을 했다.

한국 지방자치법(제2조 3항 및 제12장)에도 영국 통합기관과 유사한 개념인 ‘특별지방자치단체’가 있다. 특별지방자치단체(법 제199조 1항)는 2개 이상의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광역적으로 사무를 처리할 필요가 있을 때 설치할 수 있다. 물론 지방의회 의결과 행정안전부의 승인은 필수다. 특별지방자치단체는 지역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중요한 시도지만 아직까지 성과가 없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선결과제도 있다.

첫째, 사무 범위와 권한에 관한 것이다. ‘공동의 특정한 목적’을 보다 섬세하고 명확히 해야 한다. 영국 통합기관은 교통, 주택, 경제 개발 등 사무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한국 특별지방자치단체도 광역적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기능에 집중하고, 실질적인 행정 및 재정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정치적 리더십이다. 영국 통합기관의 직선 시장은 행정구역을 넘어서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우리도 참여 지방자치단체의 굳건한 합의를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중앙 정부와의 협상과 협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세 번째, 주민의 참여와 의회의 협력이다. 영국 통합기관은 지방의회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했다. 한국 특별지방자치단체도 의회 구성을 비롯해 폭넓은 주민 참여 등을 통해 충분한 대표성을 갖추고 주민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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