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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
찻집에 앉아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일을 했다. 옆 테이블에는 등산복 차림의 다소곳한 여학생이 글을 읽고 있었다. 무척 예뻤다.
여학생의 볼펜이 떨어졌고, 주워주려고 고개를 숙였다가 머리를 부딪쳤다.
“괜찮으세요? 머리가 단단하시군요”라는 말과 함께 서로 웃었다. 여학생은 단단한 머리핀을 하고 있었고, 머리는 진짜 아팠다. 연애가 불타올랐다.
비 오는 날 석철이를 만나면 듣는 이야기다.
“날씨가 내 인생 살렸어, 비 때문에 아내를 만났으니까” 무기력하던 석철의 나날은 열정으로 바꿨고, 아내 덕에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합격했다.
말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기는 한다.
날씨가 석철의 삶을 바꿨고, 아내가 석철의 삶을 살렸다. 요즘도 비가 오면 아내와 데이트를 한단다. 석철은 정말 아내를 사랑한다. 석철아, 20년, 30년이 흘러도 꾸준히 그 마음이기를 빈다, 간절히!
날씨 때문에 역사가 바뀌기도 한다.
글을 꽤나 읽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말한다. 바람의 흐름을 알고 있던 제갈량이 조조의 군사를 물리친다. 제갈량의 날씨 통계는 가히 신의 경지다. 작가 나관중의 탁월함이겠지만.
쿠데타의 역사를 꿰는 사람들은 이성계를 말한다.
요동정벌을 하러 떠났다가 날씨를 빌미로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린다. 그때 수도였던 개성으로 말머리를 돌린 이성계는 최영을 숙청하고 정권을 잡는다. 조선의 시작이다.
고구려 때 113만명의 병력으로 수나라가 쳐들어왔다. 을지문덕은 살수대첩으로 나라를 구했다. 날씨와 지형을 이용한 전략이었다. 물리친 113만명은 지금도 어마어마한 숫자인데 그때는 더했으리라.
고려 때는 거란의 요나라가 여러 차례 침략했다. 일흔이 넘은 강감찬은 귀주대첩으로 25년 전쟁을 마감한다.
그때의 25년은 한 사람의 젊음을 뛰어넘는 시간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날씨를 이용한 귀주대첩을 ‘한국판 적벽대전’이라 부른다.
왜적이 이 땅을 짓밟은 임진왜란 때, 날씨는 물론 학익진을 비롯한 새로운 방식을 펼친 한산도대첩으로 이순신은 왜적을 물리친다.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도대첩은 우리나라를 지킨 3대 대첩으로 꼽히고, 한산도대첩은 세계 3대 해전에 들어간다.
이 모든 승리에는 전략도 있었지만 날씨 파악과 적용을 빠뜨릴 수 없다. 무엇보다 나라를 지키려는 서민들의 절실한 마음과 죽음이 함께 했다.
역사에는 이름 한 줄도 남기지 못했지만! 요즘도 보면, 말로 떠버리는 사람보다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더 멋지다.
날씨를 읽으면 멀리 볼 수 있고, 깊이 헤아릴 수 있으며, 생각을 넓게 펼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날씨는 예약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다. 요새 우리가 플라스틱도 많이 쓰고, 흙으로 갈 빗길도 막고, 나무가 자라는 땅을 사람이 차지하는 바람에 날씨를 조금씩 바꾸기는 하지만.
어쨌든 날씨는 나의 스케줄을 바꾸고, 우리 마을을 바꾸고, 역사도 바꾼다.
날씨 앞에 ‘하필’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고, ‘어쩜’이란 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 하필 비까지 와서 지랄이여? 어쩜, 비까지 우리의 사랑을 돕네.
날씨를 벗 삼아 어깨동무하면 ‘어쩜’ 좋은 일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릴 수 있다.
날마다 하늘을 보고 날씨를 살펴야겠다. 혹시 아나? 나에게 제갈량과 문덕과 감찬 같은 힘이 생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