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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성 김형수 화백(지난해 함평군립미술관 전시를 앞두고 사전 인터뷰에 나선 석성) 사진제공=함평군립미술관 |
석성 김형수 화백은 1943년 심산 노수현(心汕 盧壽鉉)의 문하에서 심산의 명확한 골격을 이루고 있는 화법(畵法)을 바탕으로 해 독자적인 품격과 양식을 갖추기 시작, 한때 남농 허건(南農 許楗)과 동강 정운면(東岡 鄭雲勉)을 사사(師事)했다. 하지만 석성은 심산을 사사한 뒤 기본적인 기량이 탄탄하게 발현돼 개성적인 화풍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의재 허백련이나 남농 허건 문하를 통해 화단에 나온 수묵화가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등 자신만의 독보적 화풍을 구축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대부분 수려한 심산유곡(深山幽谷)이나 강변, 산야의 풍경을 기본 소재로 해온 석성은 대자연의 풍광을 웅장하면서 섬세하게 표현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다 마을의 존재나 삶의 표정을 적절히 곁들여 다양한 현실적인 구도를 취하며, 담채로 계절적인 분위기와 정취를 부각시키는 산수화 형식은 힘 있고 명확한 골격을 이루는 특징적 표현성으로 성립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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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밭’(1953) |
그의 산수는 기존 화법에 따라 ‘기운생동’(氣韻生動)과 골법용필(骨法用筆·붓을 다루는 방법)을 근간으로 하는 수묵화 전래의 패턴을 지키고 있으나, 오늘의 관점과 시각에서 수용할 수 있는 농촌의 정취를 함께 담고 있다. 안개가 흐르고 있는 심산유곡(深山幽谷·산 속의 그윽한 골짜기)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념 속의 산수경(山水景)이 아닌, 친근한 우리 주변의 풍경이라는 이야기다.
석성은 지난해 10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두달간 함평군립미술관에서 '백화난만'(百花爛漫)이라는 주제로 지역 최고령 김영태 화백과 함께 한 '국향대전 기념 2인전'이 생애 마지막 전시가 됐다. 이 전시에 석성은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없어 신작을 출품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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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1969) |
1940년대부터 미술활동을 본격화한 석성 김형수 화백은 1929년 전남 해남 출생으로 목포 문태중과 광주서중을 거쳤으며, 1968년 광주아카데미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펼쳤고, 2009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제12회 개인전 ‘광주 시립미술관 올해의 작가 석성 김형수전’이 최근 가장 크게 진행된 개인전이었다. 또 2009년 광주시에 작품 80점을 기증하기도 해 석성에게는 여러모로 의미있는 한 해가 됐다. 그에 앞서 2008년에는 집안 벽장 깊숙이에 오랫동안 묵혀 있던 가방 속에서 우연찮게 드로잉 뭉치를 발견했고, 그 가운데서 일부를 선별해낸 작품들을 소개하는 석성의 초기 드로잉전이 열려 호응을 얻었다.
단체전은 1966년부터 시작돼 5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동참했다. 1946년 제1회 전남미술전람회 입선을 시작으로 국전 입선 4회(1962, 1664, 1968, 1969), 1965년 제1회 전남도전부터 1967년 제3회 대회까지 특선 3회, 1986년 제3회 금호예술상과 1988년 광주시 시민대상(예술부분) 등 다수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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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진’(1962) |
유가족으로 김상용·상준·동훈·용민씨 등 3남1녀가 있다. 빈소는 광주 천지장례식장 30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6일 오전 8시 30분이며 장지는 광산구 선영.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5.12.04 (목)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