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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경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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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
첫 소설집 ‘공마당’으로 제3회 부마항쟁문학상을 수상한 정 작가는 첫 소설집에 이어 이번 작품집 역시 소설적 구성과 깊이를 더하고 주제를 심화시켜 ‘여순항쟁’의 아픔을 다루고 있다. 소설적 구성을 최대한 배제하며 역사적 사건의 상처와 증상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려 했던 태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접근한 이번 작품집은 단순한 ‘증언’을 넘어 상처가 개인의 삶과 신체에 남긴 증상, 그리고 그 증상을 이해하고 치유하려는 서사로 진화하는 듯 읽힌다,
작가의 소설은 이제 단순한 ‘증언’을 넘어 상처가 개인의 삶과 신체에 남긴 증상, 그리고 그 증상을 이해하고 치유하려는 서사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그의 소설에는 상처투성이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한결같이 모두 아프다. 이들은 우울, 섭식장애, 가출 같은 신경증적 증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부조리로 얼룩진 국가폭력의 심각성을 일깨운다.
이를테면 어머니의 반복적인 가출과 그로 인해 돌봄을 떠맡아야 했던 딸들의 이야기는 과거의 사건이 현재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서사로 작동하는데, 역사의 종언보다는 세대를 넘어 전염되는 상처가 폭넓게 몸과 정신을 지배한다. 그 상처들은 오롯이 국가폭력으로부터 온 것이어서 그 폐해야말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유되고 하는, 그런 류의 상처가 아닌 것이다. 세대를 흘러서 전염돼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어대는 암덩어리와 같은 것이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폭력이 남긴 집단적 트라우마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표제작 ‘맹자야 제발 덕분에’에 등장하는 인물은 맹자로 당돌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맹자는 군인과 산사람 사이에서, 태극기와 인공기 사이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했다. 산사람들의 강압에 의해 인민위원장이 됐던 맹자의 아버지는 국군들의 총살로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를 하던 작은아버지도 사건에 연루돼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이제 집에는 여자들만 남았다.
그럼에도 맹자는 전혀 주눅들지 않고 일상을 구가한다. 마을사람들은 맹자를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까지 한다.
이렇듯 가부장적 질서와 공포가 지배하던 상황에서도 맹자는 울거나 숨는 대신, 사건을 회피하지 않으며 보고, 듣고, 기억한다. 이 점에서 맹자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증언자의 원형에 가깝다.
맹자의 시선은 이데올로기나 권력에 포획되지 않은 채,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소설 말미에서 맹자가 ‘붓’을 물려받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이는 단지 가문의 희망을 잇는 도구가 아니라, 젠더와 이념을 넘어 역사를 기록할 미래의 화자를 예고한다.
이 소설은 국가 폭력, 가족의 해체, 여성에게 전가된 돌봄과 희생의 역사가 드러난다.
김영삼 평론가는 “작가의 새로운 소설들은 가혹한 진실에 얽힌 피 묻은 문장 위에 픽션적 장치들을 덧입힘으로써 한 걸음 더 진화한 듯하다. 눈에 띄는 것은 ‘아픈 여자들’의 신경증적 증상들”이라면서 “우리의 맹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을 지키며 남자 어른들이 끌려간 곳을 찾는 일에 열중이다. 어머니와 언니는 약하지만 맹자는 당돌하고 강하다”고 평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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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8 (목) 21: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