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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영 할머니는 9일 일본 도쿄를 방문해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를 찾았다. 사진제공=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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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영 할머니는 9일 일본 도쿄를 방문해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를 찾고, 일본 시민단체들과 함께 배상 책임 이행을 요구하는 ‘마루노우치 행동’에 참여했다. 사진제공=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인 정신영(96) 할머니가 일본을 직접 찾아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9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에 따르면 정 할머니는 일본 도쿄를 방문해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를 찾고, 현지 시민단체들과 함께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마루노우치 행동’에 참여했다. 이어 일본 국회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집회에도 참석해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사 청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일정에는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문제 해결과 과거청산 공동행동’과 피해자 지원단체인 ‘나고야소송지원회’ 등이 함께해 연대의 뜻을 보탰다.
정 할머니가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직접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피해자들은 국내 법원에서 승소했지만, 일본 기업이 배상에 응하지 않으면서 갈등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 할머니는 1930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1944년 만 14세 때 “일본에 가면 공부도 시켜주고 먹여준다”는 말에 속아 나고야의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갔다.
하지만 현실은 강제노동이었다. 군대식 통제 아래 하루 종일 페인트 작업을 해야 했고,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 발생한 도난카이 대지진은 또 다른 비극을 남겼다. 함께 끌려간 친구 6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B-29 폭격까지 이어지며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됐다.
광복 이후 귀국했지만, 정 할머니는 오랜 기간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했다. ‘위안부’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사회적 낙인 때문이었다. 결혼 후에도 가족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했던 그는 2020년에야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하며 침묵을 깨기 시작했다.
정 할머니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진으로 억울하게 죽은 친구들을 볼 낯이 없다”며 “평생 죄인처럼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이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측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22년 일본 정부가 ‘후생연금 탈퇴수당’ 명목으로 99엔을 지급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송태영 기자 sty1235@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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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9 (목) 19: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