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잔인한 4월이 우리에게 건네는 역설적인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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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잔인한 4월이 우리에게 건네는 역설적인 위로"

윤익 광주시립미술관장

20세기 서구 문학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미국 출생의 영국 시인이자 극작가, 그리고 문학 비평가인 T.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은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며, 현대인의 황량한 내면과 정신적 위기를 날카롭게 포착해 낸 인물이다. 엘리엇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유래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문구는 이제 시적 표현을 넘어 봄을 맞이하는 우리의 복합적인 심경을 대변하는 하나의 관용구가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매년 4월이 찾아오면 거리에는 어김없이 그의 문장이 나타난다. 만물이 소생하고 꽃향기가 진동하는 이 화창한 계절에, 왜 시인은 ‘잔인함’이라는 서늘한 수식어를 붙였는지 여러모로 궁금해진다.

엘리엇이 말한 잔인함은 단순히 슬픔이나 고통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생명력의 강요’에 가깝다. 겨울의 황무지에서 죽은 듯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뿌리들에게, 4월의 봄비는 다시 일어날 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이는 잠든 땅을 깨우는 비처럼 깨어남의 고통을 상징한다. 아무것도 책임질 필요 없는 안락한 동면의 상태로 인식되는 망각의 겨울은 다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며, 살아내야 하는 의무의 시작인 오랜 기억속의 봄을 소환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닮아있다. 때로는 변화의 물결이 몰려올 때, 우리는 성장의 기쁨보다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피로감을 먼저 느낀다. 억지로 밀어 올려지는 새싹의 고통이 바로 4월의 본질이다.

문화적으로 4월은 ‘대조의 미학’이 극대화되는 시기이다. SNS는 벚꽃 아래 웃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으로 도배되지만, 그 화사한 배경은 역설적으로 누군가의 고독을 더욱 짙게 만든다. 이는 찬란한 배경과 더불어 모순적이게도 그 이면에 난무하는 소외된 개인들을 불러낸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말한다. “세상은 저토록 눈부시게 피어나는데, 왜 나의 삶은 여전히 겨울인가?”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은 4월은 더욱 잔인하게 다가온다. 모두가 축제에 초대받은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홀로 일상을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 봄바람은 부드러운 초대가 아니라 날카로운 채찍질이 되기도 한다.

이 역설적인 계절을 현명하게 통과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감각을 깨우는 문화적 향유와 신체의 생동감을 회복하는 실질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4월의 잔인함이 상대적 박탈감이나 고립감으로 다가올 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그것은 정적인 전시 관람이다. 화려한 인파를 벗어나 미술관의 고요한 공간 속에서 캔버스에 쌓인 시간의 층을 마주하는 일은, 정신적 동면에서 깨어나는 부드러운 통로가 된다. 여기에 타인의 사유가 담긴 독서나 선율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는 음악회 방문을 더 한다면, 4월의 불안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보편적인 생의 진통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문화는 이 시기 우리가 겪는 심리적 가뭄을 해소해 주는 가장 따뜻한 비가 된다.

동시에 마음을 지탱할 신체의 지지대를 세우는 일도 필수적이다. 뿌리를 뻗는 새싹에게도 단단한 토양이 필요하듯, 우리 역시 실생활의 운동 루틴을 통해 생명력을 증명해야 한다. 매일 아침 햇살 아래 20분간 걷는 그것만으로도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은 우리 몸의 감각을 깨운다. 일과 후에는 경직된 몸을 펴는 스트레칭과 중심을 잡는 코어 운동을 루틴화해 보자. 내 몸의 중심이 바로 설 때, 외부의 화려함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 깊은 호흡으로 폐부 깊숙이 봄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그 찰나의 순간이야말로 잔인한 4월을 이겨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4월이 잔인한 이유는 그것이 죽음과 같은 정지 상태에서 치열한 삶으로 넘어가는 문턱이기 때문이다. 껍질을 깨고 나오는 새에게 세상은 잔인할 만큼 낯설겠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결코 하늘을 날 수 없다. 지금 느끼는 불안과 피로감은 결코 당신이 멈춰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은 지금 억척스럽게 봄비에 젖어 뿌리를 뻗고 있으며, 꽃을 피우기 위한 가장 고귀한 전투를 치르는 중이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면 스스로에게 나직이 읊조려 주자. “나는 지금 아주 치열하게 피어나는 중이다”라고 말이다. 문화로 마음을 적시고 운동으로 몸을 세우며 이 계절을 견뎌낸 모든 이들에게, 5월의 찬란한 결실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당신이 뻗어 내린 그 깊은 뿌리는 조만간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아름다운 꽃대를 밀어 올릴 것이다.
윤익 gn@gwangnam.co.kr         윤익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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