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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한 이야기브릿지 대표·광주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생태계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은 2년 전쯤 시작됐다. 문화예술 지원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칭하던 어느 정치인과의 대담, 그리고 지속 가능성을 기후위기나 약자 소외 문제로만 접근하던 선배들과의 대화를 거치며 청년 문화예술인의 위태로운 입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논하려면 결국 다음 세대가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아닙니까?” 항변하듯 뱉어낸 이 한마디는 나 스스로 청년 예술인들의 자립 생태계 구축을 화두로 삼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오늘날 청년 예술인들은 소액의 지원사업이라도 따내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내밀고 심사대 앞에 선다. 대단한 부나 거창한 기회를 얻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올 한 해, 단 한두 번의 무대라도 서기 위해 영세한 지원사업에 자신의 열정을 헐값에 넘길 수밖에 없다.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기는커녕, ‘무료’라는 꼬리표가 붙어 쉽게 예약하고 쉽게 취소(노쇼)해 버리는 소모성 콘텐츠로 전락하는 것이 지역 문화예술의 현주소다.
과거의 잣대로는 ‘예술가는 본래 배고픈 직업이며, 기회는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 질책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기획서 한 장을 들고 기업과 대학, 관공서를 전전하며 숱한 거절을 밥 먹듯 겪었다. 하지만 시대와 정서가 변했다. 지금의 청년들에게 배를 곯아가며 예술을 하라는 것이 과연 온당한 조언인가. 청년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공론장조차 턱없이 부족하고, 기회가 단절되니 문제를 의제화하는 동력마저 희미해진다. ‘스스로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핀잔에는 ‘우리가 만들면 기성세대가 관심이나 가져주는가’라고 되묻고 싶다. 청년들이 모여 고충을 토로하는 자리에 귀 기울이려 찾아오는 어른을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예산의 불균형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7개 시·도별 전체 예산 대비 문화예술 예산 비중을 보면 광주가 1위, 전남이 16위다. 전남의 열악함은 객관적 수치로 드러나지만, 광주의 ‘1위’라는 타이틀에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 등 대규모 국책사업이 포함된 통계적 함정이 숨어 있다. 지역 시민단체 포럼 자료에 따르면 청년 문화예술인에게 직접 닿는 체감 예산은 광주가 전국 최하위권에 머문다는 뼈아픈 지적도 있었다. 현장에서 느끼는 갈증은 통계표 밖에서 더욱 심각하게 타들어 가고 있다.
분노와 비판을 넘어, 이제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그 첫 단추는 ‘제대로 된 거버넌스 구축’이다. 행정이 주도하고 민간이 종속되는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상호 견제와 자율성이 보장되는 수평적 협의체가 절실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역 문화재단, 광주비엔날레라는 거대한 세 축에 맞서 대등하게 목소리를 내고 균형을 맞출 ‘독립적인 청년문화예술 거버넌스’가 의사결정의 무게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곳에 청년 기획자들의 실질적 지분이 보장되고 정책과 전략이 수립될 때, 비로소 자립을 위한 환경 조성이 시작될 것이다.
정책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일회성 현금 지원을 넘어, 청년들이 자신의 콘텐츠로 정당한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구조를 짜야 한다. 시민들의 ‘공짜 문화’ 인식을 개선할 문화예술 바우처제도 신설 등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실현될 수 있다. 발굴부터 교육, 사업화, 지역 정착으로 이어지는 장기적이고 입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제조업 기반의 성장은 제한된 부지와 이해관계로 한계가 명확하지만, 문화콘텐츠가 창출할 부가가치와 성장 전망은 무한하다. 광주는 문화예술과 AI 중심의 소프트웨어 도시로 도약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문화를 ‘새로운 경제의 핵심 축’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대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이 모든 변화의 동력은 건강하고 실질적인 거버넌스에서 나온다.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협의체가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지고 시범운영을 통해 함께 과정을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거버넌스여야 한다. 어떻게 하면 물고기가 바다로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알을 낳게 할 수 있을까. 어종을 다양화하고 터를 넓히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정작 ‘물’이 말라버렸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물이 있으면 물고기는 자연스레 모여든다. 청년들이 고충을 나눌 소통 창구가 있고, 그 제안이 현장에 반영되는 효용감을 느끼며, 비로소 ‘이곳에서도 예술로 먹고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을 때 탈(脫)지역 행렬은 멈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 그들이 마음껏 헤엄칠 생태계라는 ‘물’을 채워줘야 한다.
김경한 gn@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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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0 (월) 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