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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화 교육학박사 |
서울에 사는 벗과 통화를 했다. 인지도가 높은 배우는 아니지만, 광고도 찍고 보조출연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방송일을 즐겁게 하는 친구다. “요즘은 어때?”라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AI의 등장으로 일이 줄었다는 것이다. 교육 방송, 목소리 더빙 일까지 AI가 대신하면서, 서브 역할을 하던 광고 일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기에 무얼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는 벗과의 통화를 마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AI가 만든 드라마 기사를 접했다. 중국 후난 TV가 황금시간대에 ‘배우도, 카메라도, 조명도, 세트장도 없이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필요한 것은 데이터와 프롬프트뿐이며, 제작비 역시 기존 방식보다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인공지능이 단순히 인간의 작업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창작의 영역까지 가져간다면 배우, 미용, 조명, 소품 담당, 스태프 등의 일자리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작 능력을 더욱 정교하게 닮아갈수록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임을 증명을 해야 할 것이다. 이에 인간은 예술 분야에서도 사람이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기억하며, 어디에서 상처받고, 무엇을 욕망하며, 누구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오히려 인간이 만든 것임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이미지와 영상, 글과 음악까지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과물을 눈으로만 구별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을 구분하는 표식은 단순한 기술적 인증을 넘어 인간이 살아온 삶의 흔적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때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용서한다. 예술 역시 혼자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회와 시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 이에 작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경험한 감정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니다. 한 작가가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 작품 안에 흔적으로 남는 과정이기도 하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각자가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 평범한 골목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오는 장소가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아무 의미 없는 한 문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동안 환상적인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면 이제는 아날로그 스토리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이미지를 학습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경험할 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홀로 남겨진 밤을 보낼 수도 없다. 실패한 뒤 다시 일어나는 과정도 스스로 경험하지 않는다. 경험의 가치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행하고,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예술을 경험하는 데에도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경제적 여건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경험의 폭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을 넘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며 스토리로 만들어가는가에 있다.
인공지능은 점점 더 인간처럼 만들고, 쓰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겨진 질문은 AI보다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가를 넘어서서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기억하며, 누구와 관계를 맺고, 어떤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이 가까울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어떻게 살아왔는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날 것의 이야기에 해답이 있을 것으로 본다. 한 인간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신선하고 새로운 재산일 것이다.
김명화 gn@gwangnam.co.kr
김명화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9.09 (수) 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