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표지 |
아마 그에게는 오월이 역사책에서 본 사건이 아닌, 고 3 중간고사 무렵 겪은 실제의 일로 여전히 기억 속 부채의식으로 남아있기에 그의 마음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겨넣은 일과 진배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가 꾸리고 있는 미술관의 이름 ‘오월’만 보더라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오월 기록에 나섰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최근 그가 지금도 고통에 시름하는 사람들의 5·18항쟁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총알의 기억’(내일을 여는 책 刊)을 펴냈다. 오월 이후의 세대에게는 한 편의 비극을 다룬 소설처럼 읽힐 수 있지만 경험치를 가지고 있는 세대들에게는 엄연히 근현대사에 대한 기록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오월에 대한 규정은 ‘잊히지 않고, 바뀌지 않으며, 끝나지 않는다’라고 하는 표제 좌측 부제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5·18에 대한 생각의 행간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고도 남겠다라고 드는 생각이 오월미술관의 다수 전시를 통해 시대의식을 각인하는 전시를 여러 차례 구현한데서 잘 알 수 있다.
범 관장에게 5·18은 종료된 사건이 아닌, 현재진행형 그대로다. 가장 순정해야 할 시기인 고등학교 시절 계엄군들이 광주시민들을 살상하는 국가폭력을 목도했다.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 “이것은 청년을 넘어 현재까지 내 삶의 시간을 지배하고 있다”라는 문맥에서 오월에 대한 그의 흔들림없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여전히 미완의 역사로 남고 있기에 1980년 5월 그날을 기억 그 자체로 가슴 속에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2024년 12·3비상계엄 발동으로 그동안 5·18로 인해 탄탄하게 뿌리를 내렸던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았던 일도 그에게는 예사롭지 않았다. 45년 전 5·18이 지금의 민주주의를 지탱시키는 근간이 됐다는 것 역시 그의 의식에서는 확고하다.
실제를 근간으로 하는 다큐소설 같은 이 작품집은 두 가지 이야기가 그의 문체로 빚어져 있다. ‘꿈꾸는 총알’과 ‘아름다운 상상’이 그것. ‘꿈꾸는 총알’은 5·18민중항쟁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한 남자의 스토리이고, ‘아름다운 상상’은 1980년 5월 총상으로 사망한 임신부의 스토리다.
![]() |
범현이 관장 |
이 작품집에 대해 조진태 오월문예연구소장은 표사에서 “총알이 나비가 되는 환유를 통해 오월의 평화를 꿈꾸는 잔잔한 기억의 서사가 뭉클하다”고 전했고, 김호균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자기 존재에 몰두하고 사색하는 총알이자 시대의 역경을 헤쳐 가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계엄군의 총에 맞고 절명한 임신부 배 속 태아의 절규”라고 언급했다.
저자는 “이 두 이야기는 5·18민중항쟁에 대한 기록의 한 편린일 수 있다. 문학의 가장 근본인 당대의 기록에 대한 리얼리즘 말이다. 언제나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하고, 불편한 진실들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역할이기 때문”이라면서 “혼돈 그 자체의 참혹한 시대이지만 문학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공유하며 꿰뚫어볼 힘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작품 속 주먹밥이나 투사회보 등 오월항쟁을 상징하는 매개는 물론이고 1980년 5월 8일 전남대총학생회와 조선대민주투쟁위원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제1시국 선언문’ 같은 귀한 사료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외에 작품집 말미에는 연보와 같은 ‘5·18민주화운동의 그날들’을 첨부해 5·18 이후 세대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작품집 속 그림(삽화)은 ‘박승희장례행렬도’와 ‘1980.5.21. 발포’ 등의 작품을 통해 오월항쟁이 획득한 민주주의의 나아갈 방향 모색에 힘을 보태온 중견화가 하성흡씨가 맡았다. 이번 작품집 속에는 그가 그린 옛 전남도청 광장(현 5·18민주광장)의 그날의 엄혹한 풍경이나 희생된 시민들 운구 장면을 묘사하는 등의 그림이 글에 대한 몰입도를 한층 더 배가시키고 있다.
표제에서 ‘알’을 실탄이 뚫고 지나간 듯 표현한 점도 독자들의 눈길을 붙잡을 것으로 보인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표제에서 ‘알’을 실탄이 뚫고 지나간 듯 표현한 점도 독자들의 눈길을 붙잡을 것으로 보인다.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