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속가능한 광주마을공동체운동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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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속가능한 광주마을공동체운동을 위해

김경일 광주지속협 지속가능한마을회의 위원장·(사)공동체 모닥 이사장

김경일 광주지속협 지속가능한마을회의 위원장·(사)공동체 모닥 이사장
연일 섭씨 40도에 육박한 폭염이 지속되더니 난데없는 물벼락까지, 역대 기록을 갈아엎고 달려드는 극한의 폭염와 폭우는 가난하고 힘없는 시민들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진행 속도를 가늠할 수 없이 몰려오는 AI시대는 어떠한가.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떨지 몰라도 아무런 준비 없이 당장 직면한 시민에게는 세대 간의 소통마저 가로막는 형국이어서, 앞으로 펼쳐질 세상에 대한 희망마저 내비칠 수 없게 한다.

새로운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제대로 살아 숨 쉬며 작동하는 광주공동체가 되려면 그 밑바탕에 건강한 말길의 소통이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거대자본과 집적된 기술이 몰아가는 이 시대의 문법에 따라가지 못하는 시민들이 점차 소외될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지역공동체들은 서로 제각각의 다른 언어로 불통이 됐던 아비규환의 고대도시 바벨론을 예감하게 한다. 그동안 ‘광주공동체 정신’이 위기 상황에서의 즉각적인 생존과 공동체적 연대를 이끌며 선순환 기재로 작동 됐다면, 이제 광주는 주먹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들이닥친 재난적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시점에 직면했다.

1980년 5월 광주는 비극의 한가운데서도 경이로운 공동체의 기적을 일궈냈다. 신군부의 폭력적인 진압과 도시의 고립으로 인한 국가 시스템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서로를 돌보는 ‘광주공동체’를 만들었다. ‘주먹밥 정신’으로도 말하는 ‘광주정신’은, 국가가 위기에 처한 엄혹한 상황 속에서 더 빛을 발했다. 2024년 12월 3일. 폭력적인 계엄으로 시작된 내란 위기 상황 속에서도 죽은 자가 산 자를 일깨우고 살려내는 강력한 백신으로 ‘광주정신’은 즉시 작동했다. 허위에 갇힌 허약한 민초들과 위기에 처한 온 나라를 일깨워 정신을 가다듬게 해 줬던 광주, 1980년 5월 피로 지켜낸 민주화와 주먹밥 공동체를 기억에서 다시 불러내 ‘죽은 자가 산자를 깨워낸’ 도시는 의연하게 제 몫의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 이 위기 속에서 광주정신이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불러오는 큰 힘이 됐다.

그동안 광주공동체에서 발현한 광주정신은 지역의 핵심축으로 의연하게 작동하고 있다. 광주공동체는 45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 정신을 오롯하게 지켜오며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순한 과거의 아픔에 대한 호명만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사회 변화 동력이자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구현의 핵심 가치로 더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공동체 현장 곳곳에서 만난다.

1990년대 후반 광주 북구에서 시작된 광주의 마을만들기 운동은 5·18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등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학습을 통해 마을의 문제해결을 시도해 왔다. 이를 이어받아 2009년 시작한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내 집 앞 마을 가꾸기 사업’은 광주마을공동체 운동을 광주 전역에 확산하며 시와 각 구의 공동체 중간 지원조직을 만드는 데에도 일조했다. 이는 ‘주먹밥 정신’이 보여준 나눔과 연대, 대동 정신이 일상생활 속에서 구현되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광주는 그렇게 도시 개발과 코로나19, AI 대변혁으로 인한 공동체 가치 상실의 위험을, 내면적 가치와 역사적 자긍심을 통한 공동체 회복 운동으로 슬기롭게 넘어서는 중이다. 도시의 물리적 공간 환경 개선을 넘어, 지역공동체 복원, 돌봄 공동체 형성, 그리고 사회적 경제와의 연계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각적인 활동으로 지금도 광주의 마을공동체 운동은 확장되고 있다.

국가적 정치 이벤트나 대선 이후의 사회적 분위기와는 별개로, 풀뿌리 마을공동체의 따뜻한 발걸음은 다양한 각도에서의 지원이 멈추지 않고 지속돼야 한다. 승자독식의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의 심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서, 마을공동체 운동이 쌓아놓은 사회적 자산은 불평등을 해소하며 경제적 위기를 풀어내고 재난 위기를 넘어설 민생 회복력의 열쇠다. 마을공동체 운동은 건강한 사회적 자본의 산실이자 보편적 복지의 보물섬으로 더 주목받아야 한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상호 부조, 그리고 끈끈하게 살아서 작동하는 네트워크는 지역사회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더 활발하게 기능해야 한다.

역사적 시련과 국가적 대변화 속에서도 광주의 진정한 힘은 풀뿌리 단위에서 싹트고 성장하는 따뜻한 마을공동체의 정신과 이에 부응해 줄 지속가능한 실천에 있다. 그동안 5·18 주먹밥 정신을 통해 ‘민주’와 ‘인권’의 가치를 세계에 알렸듯이, 이제는 ‘자치’와 ‘연대’,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선도적인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에 기반한 광주 마을공동체 운동이 제 몫을 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자긍심에 기대 과거의 영광을 유추하는 ‘우물 안 개구리’식 운동이 아니다. 더 낮게, 더 가까이, 시민들의 눈높이로 바라보고, 그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와 아픔을 함께 나누는 이 시대에 부응하는 광주의 큰일임에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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