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시간들, 시어로 모나지 않게 다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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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

아픈 시간들, 시어로 모나지 않게 다듬기

이숙현 두번째 시집 ‘푸레독 여자’ 출간
결핍·추위와 맞서 얻어낸 삶 본질 탐색
4부 구성 57편 수록 "사유의 흔적 짙다"

‘푸레독 여자’
광주 출생 이숙현 시인이 두번째 시집 ‘푸레독 여자’를 현대시학 시인선 163번째 권으로 최근 펴냈다. 이번 시집은 지난 2012년 발간했던 첫 시집 ‘영산전이 생생하다’ 출간 이후 13년만에 선보이는 것으로, 그동안 시인이 살아온 시간을 위시로 족적이 투영돼 있다. 몸과 마음, 아니 삶이 많이 아팠던 탓으로 그의 시쓰기는 더이상 속도를 내기 어려운 형국에 빠져 들었다. 투병생활을 해야 했기에 근원적 생명에 대한 제문제들이 놓여 있을 뿐 문학적 사유나 감수성을 끌고 긴 시간들을 헤쳐 나오기는 어려웠을 법이다. 하지만 그는 아픈 시간들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 허투로 버리지 않고, 모난 것은 다듬었다. 또 너무 둥그레해서 손으로 잡기 어려운 것들은 표식을 하거나 잡을만한 꼬투리를 만들었다. 이 시집이 그 표식이자 꼬투리인 셈이다.

그의 시는 아프지 않고는 걸러낼 수 없는 삶의 찌꺼기들이 군데 군데 묻어난다. 그러면서 근원적인 삶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부럽다’ 같은 시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시인은 ‘누군가 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데//카톡의 오래된 친구 중/갈수록 희극으로 사는 여자를 본다//사는 게 고만고만/속사정 알면 공평하다 싶다가도//속물 없는 재능을/넘침 없이 드러내는 그 여자가 부럽다//결핍도 추위도 모르면서/어디서 오복의 비법을 터득했는지//온기를 나누고 얻는/자족의 옷은 일찍도 입어//옹이 하나 없을 그 여자를 보며/순백색 부럽다를 중얼거린다//한참을 실종됐다가 찾은 말이다’라고 노래한다.

아둥바둥(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비슷하다. 상처없는 사람 없고, 성한 가족 드물다고 했다. 어차피 고상한 척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나, 쉽지 않게 궂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나 말 못할 ‘속사정’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터다. 결핍이나 추위를 모르는 삶이 어디선가 오복을 얻고, 온기나 자족을 충족시켰다손 치더라도 단단한 심지같은 옹이가 박혔을리 만무하다. 시인이 부러워 하는 대상은 결핍이나 추위와 맞서 얻어낸 오복과 온기를 말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대물림되거나 행운으로만 점철된 삶이 어디 근원적 삶의 본질을 터득하며 나아갈 수 없는 이치처럼 말이다.

시집 표제가 된 ‘푸레독 여자’는 제2부 첫번째 작품으로 수록돼 있다. 푸레독은 유약없이 굽다가 마지막날 굵은 소금을 뿌려 완성하는 옹기로 소나무 재와 소금에 푸른 색을 띠며 방부성과 정화력이 뛰어나 임금께 진상하던 그릇을 말한다. 삶 중 옹기처럼 깨어지지 않을 것은 없다. 결국 모두 깨어질 수 밖에 없다. 유약없이 굽다가 깨어지는 삶이야말로 얼마나 뜨거운 불구덩에서 몸서리를 쳤을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슬퍼진다. 시인의 삶은 불구덩이같은 곳에 내던졌다가 겨우 탈출해나온 기분이 아닐까 싶다.

시인은 ‘…전략…/귀 뚫린 종이 되어/순명의 문장을 몸을 새길 때/그래도 타지 않은 뜻 하나/청정으로 남는다//검붉은 시간 끝/불에 취한 빛 속에/돋아나는 푸른 독//통로로 바꾼 불가마 속에서/잿더미가 아니라 제 빛깔을 얻은//숨 쉬는 푸레독으로 남은 여자/누군지 알 것도 같다’고 읊는다.

어쩌면 이번 시집에 임하는 시적 자아의 태도나 결기가 읽혀지는 작품으로 부족함이 없다.

시인은 “그동안 애면글면 아팠고, 소중했던 시간들 시 밖에 없어 놓았던 시를 다시 잡았다”며 시집을 펴낸 소회를 밝혔다.

이번 시집은 제4부로 구성, 분주한 일상 틈틈이 창작한 57편의 시작품이 실렸다.

고재종 시인은 해설을 통해 “물론 시에 드러나는 고통들을 시인 개인이 죄다 겪은 것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삶의 비극주의에 대한 치열한 천착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만큼은 시인의 인생관, 세계관에서 우러나온 것임에 분명하다. 그의 이번 시집은 삶의 여러 고통을 겪은 이의 시답게 사유의 흔적이 무척 짙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그 악마적 고통들에 저항하는 육탄전은 대단하다. 그 육탄전의 승패와 관계없이 이 시인이 마지막으로 신앙하는 그분은 운명에 목숨을 건 싸움과 싸움꾼의 자세를 살피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태준 시인은 표사에서 “속의 욕심을 체로 걸러내 곱게 내린 듯한 유순한 마음의 시다. 독락獨樂을 즐기는 시다. 시를 읽고, 또 시는 짓는 까닭이 다른 데에 있겠는가. 이러한 “안온한 체온”(‘독백’)에 이르고자 함이니. “앓는 이끼리는/ 바로 알아보듯”(‘나주볕’) 하는 그러한 짐작과 요량을 얻었다면, 혹은 멍의 무늬를 지닌 “먹감나무 한 그루가 먹감나무를 보듯”(‘먹감나무’) 하는 그러한 안목을 얻었다면 시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모자라지 않게 하였다고 할 것이다. 다시 읊조려도 “안온한 체온”이라는 시구(詩句)의 그 높이가 좋다는 평으로 시인의 시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다.

이숙현 시인은 광주대 및 동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2005년 ‘시와사람’으로 등단한 후 시집 ‘영산전이 생생하다’를 펴냈다. 전남대 한국어협동과정 박사과정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한국어 및 한국 사회 이해 강의 등을 하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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