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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에게 통장 지급정지, 수사 절차, 금융기관과의 책임 공방은 또 다른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피해 회복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광주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이달 초 직원이 공공기관 직원을 사칭한 사기범에게 속아 약 3500만원을 송금했다. 사기범은 보성군청 소속 공무원을 가장해 명함과 연락처를 보내며 접근했다. “지역 사업체라 이윤을 보장하겠다”, “급하게 자재가 필요한데 대신 결제해주면 곧바로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말에 A씨 측은 정상적인 거래로 판단했다.
그러나 결제 직후 이상함을 느낀 A씨는 보성군에 직접 확인했고, 그런 직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사기라는 걸 인지한 뒤 15분 만에 112에 신고했다”며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움직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를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 112 상황실을 통해 금융기관과 3자 통화까지 연결됐지만, 은행 측의 답변은 단호했다. ‘물품 대금 거래’라는 이유로 즉각적인 계좌 지급정지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A씨는 곧바로 경찰서를 찾아가 정식 신고를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A씨는 “보이스피싱이라고 단정해 말했으면 지급정지가 가능했을 텐데, 물품 대금이라는 명목이 붙는 순간 벽에 막혀버린다”며 “사기범들은 이 구조를 너무 잘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광주지역 수사관들은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 1건당 평균 피해액이 3000만원대를 웃돈다”며 “광주 역시 피해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범죄 인지 직후 이뤄지는 ‘초동 대응’ 단계에서의 제도적 공백이다. 현행 시스템은 보이스피싱 등 명백한 사기 범죄로 판단될 경우에만 신속 지급정지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반면 물품 대금, 용역비, 거래 대금 등 ‘정상 거래’ 형식을 띠는 경우에는 피해자가 직접 경찰서를 방문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간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금융 범죄 특성상 자금은 수분 내 다른 계좌로 이동하고, 해외로 빠져나가면 회수 가능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피해자가 범죄를 인지하고 즉시 신고했더라도, 지급정지가 지연되는 순간 피해는 사실상 확정된다.
A씨는 “허위 신고가 우려된다면 사후 처벌로 해결하면 될텐데 현실은 그렇치 못하다.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구조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범죄 계좌의 처리 경과조차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알려주지 않는 현실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남 나주의 한 중소 건설업체 대표 B씨는 지난달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뒤 “돈보다 더 힘든 건 그 이후였다”고 말했다. 학교 관계자를 사칭한 인물의 요구에 속아 6000만원을 송금한 그는 입금 직후 이상함을 느끼고 은행과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미 돈은 여러 차례 계좌를 거쳐 빠져나간 뒤였다. B씨는 “송금 버튼을 누른 건 몇 초였는데, 그 뒤로는 한 달 넘게 매일같이 은행과 경찰서를 오가야 했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절차는 ‘계좌 지급정지’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접수되면 금융기관은 피해자의 요청이나 경찰 통보를 받아 관련 계좌를 긴급 동결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은행 창구에서 피해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사건 접수번호와 수사기관 확인서를 요구받는다. 이 과정에서 고령 피해자나 자영업자들은 절차를 이해하지 못해 혼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계좌가 정지됐다고 해서 피해 회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범죄 조직은 대부분 ‘대포통장’을 활용해 돈을 여러 계좌로 분산시키거나 현금화한다. 최초 수취 계좌가 동결되더라도 이미 인출된 금액에 대해서는 사실상 회수가 어렵다.
경찰 관계자는 “통장 정지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일 뿐, 이미 빠져나간 돈을 되돌려주는 제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이후 형사 절차라는 또 다른 장벽에 부딪힌다. 사건은 보이스피싱 전담 부서로 배당되지만, 수사는 대부분 장기화된다. 조직적 범죄 특성상 피의자가 해외에 있거나, 국내에서 검거되더라도 ‘현금 수거책’이나 ‘계좌 모집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피해자들이 기대하는 ‘돈을 빼앗은 주범’까지 수사가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광주의 한 자영업자 C씨는 “경찰에서 ‘피해자도 많고 조직이 크다’는 말만 들었다”며 “수사 결과를 기다리다 보면 1년이 훌쩍 지나가고, 그 사이 사업은 이미 타격을 입는다”고 말했다. 그는 보이스피싱 피해 이후 운영자금이 막혀 거래처 신뢰까지 흔들렸다고 했다.
민사소송은 또 다른 선택지지만, 현실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피해금 환수를 위해서는 범죄 수익이 남아 있는 계좌를 특정해야 하고, 피의자의 인적 사항이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광주 한 변호사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더라도 집행할 재산이 없으면 판결은 종잇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금융기관의 책임을 묻는 것도 쉽지 않다. 현행 법·제도상 은행은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송금이 이뤄진 경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이체했다면, 비록 속았더라도 금융사 과실로 인정받기 어렵다. 피해자들은 “범죄 계좌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피해자 지원 제도 역시 제한적이다.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이뤄지지만, 실제 환급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높지 않다. 또 지급정지된 금액 중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비율은 전체의 일부에 그친다. 피해자들은 “제도는 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정신적 고통도 크다. 피해자 다수는 자책과 수치심에 시달린다.
‘왜 속았을까’라는 생각이 반복되면서 가족과 지인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은퇴자나 소상공인들은 피해 이후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여기에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가 폭력 피해자는 ‘국립전남트라우마치유센터’가, 살인 등 형사사건처리절차를 거친 범죄피해자는 ‘스마일센터’가 심리상담 및 심리치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보이스피싱 범죄는 사기범죄이기에 대상 제외된다. 신한은행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보이스피싱제로’ 사업이 피해자들을 위한 유일한 지원정책이다.
광주지역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단순한 금전 피해자가 아니라 트라우마를 겪은 범죄 피해자”라며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주의하지 못한 개인의 실수’ 정도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모든 부담이 사실상 피해자 개인에게 집중된다는 점이다. 범죄는 조직적으로 이뤄지지만, 피해 회복은 개인의 대응 능력과 운에 좌우된다. 통장 지급정지부터 수사 협조, 금융기관 대응, 법적 절차까지 피해자가 직접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경찰 내부에서도 한계를 인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수사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왜 돈을 돌려받지 못하느냐’고 묻지만, 현행 제도 안에서는 답을 주기 어렵다”며 “사후 대응보다는 사전 차단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 ‘사전 차단’이 이미 실패한 이후다. 피해가 발생한 순간, 국가와 제도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기보다 복잡한 절차와 규정으로 피해자를 시험대에 올려놓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는 만큼, 피해 이후의 대응 체계 역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피해자 보호와 회복을 중심에 둔 제도 설계 없이는, 범죄는 반복되고 상처는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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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클립아트코리아 |
이처럼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마주한 현실은 ‘사건 종료’가 아닌 ‘고통의 시작’에 가깝다. 범죄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그 이후의 모든 절차마저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 구조 속에서 피해자들은 오늘도 또 다른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이처럼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마주한 현실은 ‘사건 종료’가 아닌 ‘고통의 시작’에 가깝다. 범죄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그 이후의 모든 절차마저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 구조 속에서 피해자들은 오늘도 또 다른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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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4 (수) 2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