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황한이 학교폭력예방교육센터 대표 |
교육부의 2024~2025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는 이러한 우려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피해 응답률은 매년 상승해 2.5% 안팎을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초등학교는 5.0%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신체적 폭력보다 사이버폭력, 집단 따돌림, 언어폭력 같은 ‘정서적·관계적 폭력’이 주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이는 관계 형성에 서툰 아이들이 오해를 대화로 풀지 못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하면서 생겨난 비극이다.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 치유하기 힘든 깊은 마음의 흉터가 아이들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는 촘촘해졌다는데, 왜 아이들은 여전히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는 학교폭력이 단순한 학생 간의 갈등을 넘어, 한 존재의 생명력과 그를 지탱하는 세계인 가정을 뿌리째 흔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임을 증명한다.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사안 발생 이후의 과정이다. 피해 학생과 부모는 국가와 학교의 보호를 기대하며 도움을 청하지만, 이들이 만나는 현장은 따뜻한 위로가 아닌 차가운 법적 절차와 행정적 안내뿐이다. 학교폭력 심의위원회라는 공간에서 피해 가족은 치유의 주체가 아닌,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입증의 주체로 전락한다. 그리고 사실관계를 확인한다는 명목 아래 쏟아지는 질문들은 피해 가족에게 고통을 줘 또 다른 가해가 되기도 한다.
‘왜 그때 바로 말하지 않았니?’,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할 만한 원인은 없었니?’와 같은 질문들은 피해 부모로 하여금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더 키우고, 국가 시스템에 대한 깊은 불신과 무력감을 낳는다. 법과 절차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이 정교한 소외는 피해 가족을 사회적 고립으로 몰아넣고 있다.
질문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것에서 어떻게 사과받고, 용서하고 회복할 것인가로. 이제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사건의 진위를 가리는 조사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나, 깨어진 관계를 어떻게 이어 붙일 것인지 묻는 치유와 회복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교육 현장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다.
2025년부터 시행되는 제5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은 피해 학생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피해학생 전담지원관을 대폭 확대하고,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사법적 절차 이전에 관계회복 숙려프로그램을 우선 실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적 해결을 우선시하는 시도들은 학교폭력 대응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적 변화에서 여전히 간과하기 쉬운 핵심이 있다. 바로 피해 학생 곁에서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가족에 대한 돌봄이다. 학교폭력은 당사자 한 명의 일상을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아이의 웃음이 사라진 거실은 순식간에 적막으로 뒤덮이고, 부모의 삶 또한 아이의 소송과 치료에 집중하게 되어 가족의 일상이 무너진다.
아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기 위해서는 그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지지 체계인 가족이 건강해야 한다. 가족이 심리적으로 붕괴된 상태에서는 어떤 훌륭한 학교 복귀 프로그램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따라서 진정한 회복은 피해 학생 개인을 넘어 그 가족 전체를 어루만지는 ‘통합적 지원 시스템’이 마련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맞춤형 가족 활동 지원이 필요하다. 피해 가족의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고, 가정 내 애착 관계를 재건하는 핵심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피해 경험이 있는 부모가 또 다른 피해 부모를 위로하며 연대하는 방식은 법적인 배상으로 채울 수 없는 정서적 공허함을 메워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일의 희망인 아이들을 다시 웃게 하는 힘은 결국 상처 입은 가족 전체를 돌보는 세심한 손길에서 시작된다. 처벌의 끝이 아닌, 관계의 시작을 바라보는 교육적 접근을 기저로 한 사회적 설계가 이뤄질 때 비로소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 진정한 봄이 찾아올 것이다.
2026.03.07 (토) 10: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