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원도심 유휴 공간, ‘시민 기증 도서 공유 박물관’으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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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기고]원도심 유휴 공간, ‘시민 기증 도서 공유 박물관’으로 만들자

이여진 광주특별시 동구문화관광재단 이사

이여진 광주특별시 동구문화관광재단 이사
이사를 갈 때마다 장서가들이나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시민들은 깊은 시름에 잠기곤 한다. 평생 손때 묻혀가며 수집한 책들이 새로운 집의 좁은 공간에 다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집안의 서재와 창고에 빼곡히 쌓아둔 책들이 지속적인 보존과 관리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폐기되거나 고물상으로 넘겨지는 것이 다반사이다.

최근 전남광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개인 소장 도서를 모아 추진하고 있는 ‘전남광주책박물관’ 건립 움직임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작지만 소중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올 연초부터 뜻있는 전남광주의 장서가들과 시민들이 모여 책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시민들의 기증을 통해 작게는 300여만권, 크게는 무려 1000만권 이상의 장서를 모으겠다는 이 구상은 단순히 도시나 마을에 ‘도서관’ 하나를 더 만드는 일만은 아니고 박물관(Museum),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기능이 합해진‘라키비움(Larchiveum)’형태의 복합문화공간을 추구하고 있다. 이 꿈이 이뤄진다면 책을 매개로 전남광주의 문화적 깊이를 더하는 동시에 관광과도 접목되어 어려운 지방 소멸 문제를 완화할 새롭고도 참신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한곳에 모아 공유자산화함으로써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만든다면 예산 부족으로 문화 인프라 확충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에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역할을 크게 할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 예산으로만 지어진 기존의 공공 도서관이 가질 수 없는 독특한 스토리와 깊이를 지니고 기증자의 사연과 취향이 묻어난 책들이 그 자체로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이 공간은 지역 공동체를 묶어주는 사랑방이자, 외부 인구를 유입하는 매력적인 장소로 기능할 수도 있다. 도심 또는 농촌의 폐교나 공실건물을 리모델링해 아늑한 ‘공유 서재’나 ‘북스테이’로 탈바꿈시킨다면, 문화적 갈증을 느끼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제 발로 찾아오는 문화 명소가 될 것이다.

책을 매개로 지역을 재생하고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사례들은 국내외 여러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 헤이온와이(Hay-on-Wye)는 1960년대 말부터 버려진 성과 유휴 공간에 헌책방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는 인구 수 천 명에 불과한 마을에 수십 개의 전문 헌책방이 들어서며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책마을로 성장했다. 이곳에서 매년 5월말~6월초에 열리는 문학축제(Hay Festival)에는 전 세계에서 온 방문자들로 북적거린다. 일본에서는 ‘내가 만드는 도서관’이라는 개념의 공유 서가인 마치라이브러리(Machi Library)가 전국적으로 1100개도 넘는다. 마을 주민들 누구나 빈 서가를 공유 자원으로 내놓고 지역 주민들이 이 서가를 자유롭게 채워 나가며 책을 매개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기도 파주출판도시가 출판 산업과 건축, 문화 관광이 결합해 연간 100만명이상이 방문하는 문화산업 단지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고 전북 완주 삼례문화예술촌의 삼례책마을은 일제강점기 미곡 창고라는 아픈 역사의 공간을 책 박물관과 북하우스로 재생해 지역의 대표 문화 브랜드로 키워내기도 하였다. 오로지 시민들의 기증 도서로 만들어가고 민간중심으로 운영하는 독특한 모델로서 전남광주책박물관이 실제 만들어진다면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책마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독창적인 랜드마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남광주책박물관의 추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보다 실천적인 추진조직이나 단체가 필요하다. 장서가는 물론 관심있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비영리사단법인은 공익성과 운영효율성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으는 회원제 개념의 기금이나 북카페 운영, 글쓰기 교실, 기증 도서를 활용한 굿즈 판매, 책 플리마켓, 나만의 책 만들기 독립출판, 기획도서전이나 참여형 문화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립형 수익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책박물관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초기에 지자체나 교육청 등 행정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자체는 원도심의 빈 건물이나 방치된 공공 유휴 건물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장기 무상 임대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조례나 제도를 정비하고 책박물관을 도시재생 사업이나 문화 도시 조성 계획의 핵심 공간으로 지정해 지원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교육청 역시 미활용되고 있는 폐교 자산을 책박물관 건립 부지로 적극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 매각이나 단순 임대를 넘어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문화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고 나아가 책박물관을 초·중·고등학생들의 창의적 체험활동 및 인문 교육장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책박물관 건립과 초기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중앙부처, 지자체, 교육청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행정안전부의 지방소멸대응기금, 고향사랑기부제,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및 유휴공간 문화재생 사업 등 지역문화 활성화 지원 사업과의 연계 추진도 고려해야 한다.

책은 개인의 소유일 때 하나의 지식에 머물지만, 사회적으로 공유될 때 공동체를 살리는 자본이 될 수 있다. 시민의 서재를 열어 지역의 미래를 밝히고자 하는 이 운동에 지자체, 교육청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책박물관 추진 시민모임은 17일 전일빌딩에서 책박물관 추진에 관한 두 번째 세미나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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