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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용 한국콘텐츠진흥원 평가위원 |
학교폭력을 경험한 학생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친구, 부모님, 선생님 등 주변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 경우,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 그리고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간 경우’ 이다. 1차 분석 결과는 우울증상이 가장 높은 집단이 학교폭력을 경험하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이다. 이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7배나 높았다. 그러나 성별을 구별하여 분석한 결과는 의외였다. 놀랍게도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말한 남학생 집단이 가장 많이 고통을 받았다. 심지어 학교폭력을 경험한 후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학생들보다 정도가 더 심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던’ 남학생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경우 남자답게 살 것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원인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에게 애써 괜찮다고 위로했을 것이고, 그 아픔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힘든 것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어디 위에 언급한 남학생뿐이랴? 우리 주변의 많은 이웃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불확실한 환경과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빠른 세상의 변화속도로 인해 사람들은 여러 형태의 어려움과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생애주기별 변화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또 사회구조적 문제로 힘든 경우도 있다. 광주 남구에서 진행 중인 ‘2017년 인생나눔교실 자유기획사업-거시기 멘토링’(문체부 주최·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광주남구문화예술회관 지역주관처)에서도 ‘별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던’ 남학생과 유사한 태도를 보였던 멘티 그룹들이 있었다. 바로 감정노동자 멘티 그룹이다. 이 사업을 통해 감정노동자 대부분이 이중 삼중으로 고통 받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예를 들면 공무직의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청소노동의 고단함뿐만 아니라 불법쓰레기 투기 등으로 야기되는 민원인들과의 갈등에 시달렸다. 심리검사 결과에서도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높았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별 것이 아닌 것으로 간주했다. 심지어 ‘스트레스 없이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또 다른 예는 보험설계사와 구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취업상담사이다. 비정규직 취업상담사들은 자신이 언제 실직이 될지 모르는 불안한 고용 구조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민원인의 구직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민원인이 구직활동의 어려움과 사회에 대한 분노를 다 받아야하는 처지였다. 보험설계사는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에 힘들어했고, 절대 ‘갑’인 보험가입자에게 이리 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감정노동으로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도움을 간절히 받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감정노동으로 인해 피폐해진 자신들의 모습이 노출되면 회사(구청 관리자·고용주·기관 등)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하여 결국 속마음을 숨겼다. 몸은 정직하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겪게 되는 차별과 편견, 무시 등과 같은 사회적 폭력 역시 병을 유발 할 수 있다.(청소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을, 비정규직 취업상담사는 불면증을, 보험설계사는 만성위염의 고통을 호소하였다.) 누구는 살길을 찾아 각자도생하라 한다. 하지만 개개인이 무장을 해서 스스로 지키는 방식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사회적 원인이 문제라면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한다. 개개인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수록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 여기에 멘토링의 존재 이유가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우리는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