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앞서 윤 대통령은 공조수사본부의 세차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된 변호인 선임계도 내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서류 송달을 거부하면서 시간을 끌어오다가 송달 간주된 지 2주일 만에야 탄핵심판 답변서를 제출했고, 그나마도 본안 내용보다 탄핵소추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고 한다.
언론들은 4일 아침 공수처와 경찰이 대통령 관저 앞을 가로막은 경호처와 5시간30분 동안 대치하다 철수한 상황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취임하며 ‘헌법의 준수’를 선서한 대통령이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불복하는 건 말이 안되는 일”,“언제까지 사법적 절차를 무시하며 국민을 참담하고 부끄럽게 하려는지…” 등등.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한 이유 중 하나가 22대 4·10 총선의 부정선거 여부를 밝히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계엄군은 그 밤에 경기도 과천에 있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들이닥쳤다. 선관위 서버실에 진입하더니, 선관위 서버의 제조사와 모델명, 포트(PORT) 번호 등을 촬영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 담화에서 보수 유튜버와 속칭 자유주의세력이 주장하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제기됐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12·3 비상계엄에 앞서 “부정선거와 여론조작의 증거를 밝혀내면 국민도 찬성할 것”이라고 했다고 검찰이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확보한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사흘 전인 지난해 11월 30일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조만간 계엄을 하는 것으로 대통령이 결정하실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전 장관은 불명예 전역 후 점집을 운영하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가리켜 “노 장군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고 문상호 정보사령관에게 지시하는 방식으로 정보사에 ‘부정선거 입증’ 임무를 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총선에서 그동안 계속돼온 보수 정당의 ‘수도권 열세’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결과는 여당의 참패였으니, 부정선거론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 아닐까. 수도권은 지난 2010년대 초반까지도 해도 보수와 진보 진영이 엇비슷한 선거 결과를 보였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크게 달라졌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수도권 122석 중 82석을 민주당이 가져갔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121석 중 103석을, 지난해 22대 총선에서는 122석 중 102석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이쯤 되면 민주당이 수도권 대표 정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호남이 주목할 만한 내용도 있다. 그동안 호남은 비록 타지역에서 선거인 수가 적은 ‘소수의 표심’이지만 수도권 등 타지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인플루엔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호남 표심의 영향력이 작동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당심도 호남지역민의 뜻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인구유출로 소멸 한계상황에 달한 호남의 상황을 고려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 5·18을 경험하고 민주화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온 386세대가 노장년으로 물러난 것도 영향이 크다.
당연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호남 대표로 민주당 최고위원직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민형배 국회의원(광주 광산구을)은 “분명한 것은 호남 표심의 수도권 연동효과가 사라졌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호남 대표 최고위원을 지도부에 입성시키겠다는 시도는 지난 21대 세 차례에 이어 22대 들어서도 물거품이 됐다.
호남의 ‘전략적 투표성향’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에 맞장구를 쳐 줄 지역이 없을 뿐이다. 그렇다면 소수인 호남은 앞으로 정치적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일각에서는 호남 출신이 아니더라도 호남에 우호적인 타지역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범호남인’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남 정치인들도 자세를 바꿔야 한다. 재선 이상만 되면 광주시장이나 전남지사 도전에 나서겠다고만 할 게 아니라 중앙 정치에서 두각을 드러내겠다는 야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