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관조…타자적 삶에 대한 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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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

삶에 대한 관조…타자적 삶에 대한 경의

이슬안 첫 시집 ‘달의 기억이 뒤척일 때’ 출간

시집 ‘달의 기억이 뒤척일 때’ 표지
2020년 ‘작가’로 등단한 이슬안 시인이 첫 시집 ‘달의 기억이 뒤척일 때’(달아실 刊)를 달아실시선 88번째권으로 펴냈다. 수묵으로 지은 농익은 풍속화 한 채(해설 명제)가 깃들어 있는듯한 시인의 이번 시집은 제목처럼 감각적 수준이 얼마만큼 높은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제목에서부터 호기롭지 않은 이 시집은 ‘달이 뒤척이다’와 ‘달의 기억이 뒤척이다’ 사이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를 삶에 대변해 해석해보면 ‘삶이 뒤척이다’와 ‘삶의 기억이 뒤척이다’라는 두 간극의 격차를 포착할 수 있어서다. 하나는 현재적 삶의 표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현재를 제외한 직전의 삶까지를 한정한다. 시인은 현재를 딛고 살아가지만 직전의 삶과 일상들에 대해 조망하고 현재적 삶의 향방을 따져본다. 뒤 해설에서 언급되지만 이야기 짓기에 탁월하다고 본 이면 역시 현재적 삶보다는 직전의 삶에 몰입했기에 가능한 전제다. 살아보지 않고 어떠한 이야기의 성립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시 중 하나로 꼽히는 ‘연어’는 근원적 삶에 대한 시인의 깊은 탐구가 돋보인다. 아울러 지난한 삶에 대한 관조는 물론 갈수록 파괴돼가는 생명의식에 대한 직관이 시적 형상화로 나타나는 가운데 우리네 삶에 잘 비유돼 시적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슬안 시인
시인은 ‘흘러만 가네/ 불멸의 푸른강/갈대숲 비켜 흘러만 가네/…중략…/등 굽은 너의 말/감출 겨를도 없이/강은 새끼 연어를 품고 흘러만 가네/하구에 닿고서야/붉어진 너의 눈망울 바라보네/내 이름 떠난/너의 지느러미 하나/바다의 밤으로 흘러만 가네’라고 노래한다. 시인이 단순하게 회귀의식을 노래하고자 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인의 ‘등 굽은 너의 말’과 ‘내 이름 떠난/너의 지느러미 하나’에서 시적 화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본다. 세파를 온 몸으로 맞서느라 말들마저 온전치 못하게 된 시간들과 주체적 삶이 아닌 희생으로 점철된 타자적 삶에 대한 경의가 드러난다.

이번 시집은 4부로 구성돼 분주한 일상 틈틈이 창작한 시편 59편이 실렸다. 4부에 수록된 ‘대인동 목욕탕에서’, ‘양동극장’, ‘치평동’에서는 오히려 시인의 현재적 삶의 단면이 잘 드러나 3부까지 시와는 조금 다른 결을 느낄 수 있다.

이슬안 시인은 자서를 통해 “달의 뒤편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세상은 너무 밝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어둠을 헤집고 가끔 달빛이 드나들기도 했는데 그 여린 빛이 내어준 마음이 시가 됐다”고 말했다.

박성현 시인 겸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시인은 반드시 있어야 할 문장으로만 구성된 이야기-짓기에 탁월하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써 내려가는 압축된 서사-기묘하지만 시인의 작품들은 별다른 퇴고 과정없이 단번에 썼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그가 그만큼 사건에 밝으며 자신을 과장하지 않음을 말한다”고 평했다.

시인은 서울 출생이지만 아는 사람 별로 없는 낯선 광주에 머물며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료 시인에 의해 전화가 와서 잘 부탁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지 않는 듯하다. 그는 현재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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