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순 개천사 운주사터 조사지역 항공사진. |
![]() |
![]() |
화순 천태산 개천사 은적암터에서 조선시대 후기로 추정되는 유구와 유물이 발견됐다.
6일 화순군 등에 따르면 지난 2023년 1월30일부터 3월9일까지 화순군 춘양면 가동리 536 일원(1750㎡)에 대한 화순 개천사 은적암터 학술조사가 진행됐다.
정밀 발굴조사 결과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유구 5기가 확인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소성(불에 맞은 흔적) 유구 2기, 건물지 2동, 배수로 1기에서 기와류, 청자 종자편, 옹기편 등 45개 유물이 나왔다.
조사 전 은적암터는 6·25전쟁 당시 화재로 폐사된 이후 대나무와 잡목이 자라나 벌목작업을 진행했다.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시기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 1호 소성 유구의 윤곽선은 타원형 상태로 90~115㎝ 길이와 20㎝ 깊이로 확인됐으며, 기와류 4개(흑청·회청색)가 출토됐다.
타원형 상태인 2호 소성 유구는 74~115㎝ 길이와 25㎝ 깊이로 확인됐고, 기와류 1개(유백색)가 나왔다.
1호 건물지는 1000㎝×600㎝ 규모로 옹기편, 암·수키와편 등 총 12개의 유물이 발견됐고, 창고(법당) 용도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2호 건물지는 1600㎝×640㎝ 규모로 아궁이(135㎝×90㎝)와 구들 시설이 확인됐고, 청자 종지편 3개, 암·슈키와편 11개가 수습됐다. 이 건물지는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요사채’로 분석된다.
1호 건물지와 2호 건물지 사이 공간에 위치한 1호 배수로는 20~700㎝ 길이와 25㎝ 깊이로 파악됐다. 升(승) 자로 추정되는 문자가 기재된 수막새편이 있었다.
은적암터 유적에서 출토된 기와와 유사한 문양이 출토된 유적으로는 곡성 당동리 사지, 곡성 천태암, 곡성 태안사가 있다. 이 문화재는 시기가 14세기 이전(곡성 당동리 사지)과 15~17세기(곡성 태안사)로 확인됐다.
개천사 은적암에 관련된 기록은 조선 후기 문헌까지도 등장하지 않지만 일제강점기 제작된 지도 등에는 은적암이 등장해 큰 규모의 암자란 평가를 내놨다.
동북아지석묘연구소 관계자는 “개천사가 정유재란(1597년) 당시 소실 이후 재건됐다는 문헌 기록으로 봤을 때 출토 기와는 17세기 이후로 추정된다”며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조선시대 후기 개천사와 주변 암자의 특성과 성격에 대한 보다 많은 연구가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화순 개천사는 조선시대 능주면에 속한 많은 사찰 중 하나로 지금까지 알려진 창건 설화는 신라 헌덕왕 13년(821년)에 귀국한 원적도의 선사가 장흥 보림사를 세운 뒤 흥덕왕 3년(828년)에 개천사를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말 도선대사가 운주사를 세우면서 세웠다는 설이 있다. 역사적인 기록은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최초로 전하고 있다.
송태영 기자 sty1235@gwangnam.co.kr
화순=구영규 기자 vip3355@gwangnam.co.kr 송태영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