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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인 심정섭씨는 18일 전남도 도립 광주의원에서 조산부 양성과정을 마친 전제영의 졸업증서를 공개했다. |
18일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인 심정섭씨(81·광주 북구)는 전라남도 도립 광주의원에서 조산부 양성과정을 마친 전제영(여·23)의 졸업증서(가로 39㎝·세로 28㎝)를 공개했다.
일제는 1879년 오키나와를 복속한 뒤 1895년 대만,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면서 대만과 조선에 총독부를 설치했다.
일본 내각이나 의회의 통제를 벗어나 오직 천황에게만 책임지는 조선 총독은 제령(制令)과 부령(俯令)을 제정하는 입법권을 가졌고, 행정부의 수반으로 사법권도 행사했다.
당시 일본이 선진성과 시혜성을 부각하기 위해 지방에 의료기관을 설치한 것이 ‘자혜의원’이었다.
자혜의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무료 진료를 통해 일제 지배에 대한 조선인들의 반감을 없애는 한편 우호적인 감정을 심어줘 조선 민중이 천황의 신민이라는 ‘황국신민정책’이 숨어있다.
일제는 1910년 9월 광주에 전라남도 자혜의원을 설치했다. 이후 1920년 ‘조선총독부 도자혜의원 조산부 및 간호부 양성 규정’을 제정, 산부인과 의관(의사)을 보좌하면서 일제 출산 장려운동에 동참하도록 했다.
이후 전남도는 자혜의원에 조산부 양성과정을 마련하고 1925년 6월부터 1926년 3월까지 조산부 양성교육을 실시했다.
교수는 전남 도립의원 의관이었던 경전민미(일본인) 외 3명으로 모두 일본 의관들이었다.
교과과목은 조산학, 해부학, 생리학, 태생학, 소독법, 육아법 등이었다. 일본과 수신(도덕)은 매 학기 공통 필수 과목으로 분류, 무조건 일본어를 익히도록 강요했다.
입학 자격은 17세 이상 25세 이하의 한국인 여성으로, 신체가 건강하고 품행이 단정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당시 조산부는 특수공무원으로, 사실상 조선 여자들에게 최고 직업이었다.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고 보수도 좋았다.
특히 지역에서는 개업이 가능한 덕분에 사실상 산부인과 의사노릇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간호부보다 조산부를 선호, 전국에서 지원자가 몰릴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이에 일반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으며, 뇌물과 인맥 등이 있어야 했다. 실제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 격인 도자혜의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군수 혹은 면장 등의 추천이 필수였다.
이번에 심 지도위원이 공개한 수여장은 1926년 3월24일 당시 도지사였던 장헌식이 졸업장을 수여한 것으로, 도지사가 도자혜의원장을 겸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전남도지사를 퇴임하고 중추원 참외를 역임한 친일거두가 됐다. 그의 배우자 임정재도 애국금차회에 가담해 황민화 전시정책에 앞장, 부부일동체가 돼 친일주구가 됐다.
심정섭 지도위원은 “일제가 조선 13도에 도립의원을 설치하고 조산부와 간호부를 양성한 것은 조선인의 인구 증가를 통해 풍부한 전쟁 인력을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심 지도위원은 일제가 1938년 2월1일 조선총독부 전남 진도군에 거주한 박동근에게 수여한 소학교 및 보통학교 교원시험(제2종시험)인 역사와 지리, 작업 과목에서 성적이 우수한 성적기량상 증명서도 공개했다. 교원 시험은 1937년 10월에 실시됐다.
심정섭 지도위원은 “조선총독부에 학무국이 설치돼 1919년부터 조선인 교육에 관한 업무를 관장했다”면서 “학무국에서 학교 교육을 전담했고, 특히 교원을 선발해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 만드는 것에 앞장섰다”고 지적했다.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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