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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
서울시는 2023년 ‘서울형 미팅사업-서울팅’을 추진한 바 있었으나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후 2024년 다시 한번 ‘설렘 인 한강’이라는 미팅사업을 추진했고, 철회 했던 사업을 왜 다시하냐는 질문에 서울시가 한 답변은 ‘기존 서울팅 사업과는 다르다’였다. 서울팅은 서울시 예산 8000만원이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설렘인 한강은 우리카드가 전액 후원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했다. 시 예산이 투입이 없기에 공식적인 저출생 대책도 아니라는 것이다. 지원서 검토, 보도자료를 통한 홍보 등 행사의 모든 실무는 서울시 공무원들의 담당이었다. 서울시의 주장대로 라면 우리카드가 서울시에 위탁 사업을 맡긴 꼴이다.
경기 성남시 또한 총 7회의 미팅 주선행사를 진행했다. 이름하여 솔로(solo) 문의 선택, 이들 가운데 결혼을 앞둔 한 예비부부가 신상진 성남시장에게 청첩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만남과 연애, 그리고 결혼까지 지방정부가 함께 한다는 명목으로 수도권뿐 아니라 부산, 대전, 대구, 경북 구미, 충남 논산 등 광역시부터 지방 중소도시까지 올해 저출산 대책으로 ‘관권 주도 주선 사업’은 굵직한 청년정책의 일환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연희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2024년도 전국 17개 광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미혼남녀 결혼 행사 건수’는 최소 54곳이다.
사업을 진행했던 지자체는 매칭률, 결혼율 등을 성과지표로 삼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자발적 중매자가 된 지자체와 저출생 대책에 단 한 걸음도 다가가지 못한 총체적 행정 무능 앞에 하나의 유령이 전국에 떠돌고 있다. ‘미팅사업’이라는 유령이.
특히 당사자인 청년층의 반대에도 이 사업을 강행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요즘 청년이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가 적다는 점, 바로 청년인구의 급격한 감소다. 청년층 인구 유출이 심각한 지방에서는 이 사유가 나름 명분을 갖는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라면 지역 일자리 정책의 확대와 보편복지, 교통문화 인프라 개선 등이 더욱 확실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이다. 이 사업에 있어 인구 유출을 이유로 드는 지자체가 있다면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두 번째로 참가자의 신원을 관이 보증한다는 것.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선 주민등록등본, 재직증명서, 소득증명서 등 경제활동에 대한 증명서류들을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주로 경제적 요건을 확인한다.
기본적으로 주선 사업은 모두에게 열린 정책이 아니다. 이는 결혼의 계급화를 부추긴다. 지역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은사람 만이 지역에 살고 그 사람들만이 이 사업에 더 편하게 참여할 수 있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하는 지역 청년은 이 사업에 참여하기 쉬울까? 주로 경제적 여건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기준을 갖춘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결혼정보업체가 되고자 지자체가 너도나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더해 연애부터 결혼까지 지자체가 같이 한다면서 왜 결혼 이후에는 지자체가 같이 하지 않는가? 출산 이후의 돌봄과 양육을 왜 국가가 같이 하지 않는가. 저출생은 불안정한 일자리, 교육과 노동, 돌봄 등 총체적 사회 불평등이 맞물려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회문화를 바꾸고 구조를 개선해야 할 사안에 있어 단기적인 이벤트성 정책들을 남발하고 있다. 정책입안자들이 이를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쉬운 해결책들만 고민하다 보면 이런 탁상행정이 반복된다.
최근 광주 도심의 초등학교 신입 학생이 10여명 남짓한가는 뉴스들이 보도되며 저출생 문제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어떤 학교는 단 1명의 신입생만 있었다. 동시에 대치동 사교육 문화를 패러디한 한 코미디언의 컨텐츠가 급부상하며 7세고시, 4세고시 등 대치동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기이하고도, 모순된 풍경이다. 죽도록 경쟁에 내몰고 경쟁을 뚫고 들어가도 삶을 안정적으로 꾸릴 수 없다. 노동소득은 너무 느리고 불로소득은 너무 빠르다. 더 이상 열심히 일해도 방 한 칸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우리는 재생산을 멈추고, 절벽으로 간다. 늘 언급하다시피, 저출생은 사회적 파업이다.
처참한 현실 앞에 겨우 이 수준에서 저출생을 논의하자고 하는 행정이 너무 우습다. 수백조의 재원을 투자하고도 제대로 된 정책적 진단조차 못 하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다.
사회는 청년을 무언가로 지칭한다. 결혼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무언가, 일을 해야 하는데 집에만 있는 무언가, 애를 낳아야 하는데 낳지 않는 무언가 우리는 늘 ‘무언가’이다. 청년 시민을 동등한 주체로, 사회를 구성하는 같은 구성원으로 본다면 이런 정책은 나와선 안 된다. 연애가 곧 결혼이라는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접근방법을 멈춰야 한다. 청년을 대상화하고, 힐난하는 언어들만 난무하는 아 이 총체적인 청년 혐오, 이 지겨운 청년 혐오.
부디 이 비극적이고 혐오스러운 유행에 광주시만은 편승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