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문 밖에 서 있는 아동그룹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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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세평]문 밖에 서 있는 아동그룹홈

박병훈 톡톡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대표

박병훈 톡톡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대표
달력 한 장만이 외롭게 을사년 한 해를 붙든 채 나부끼고 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목전에 두고 있으나 금년 한 해는 난세였다.

‘변동불거’(變動不居)의 사회였다.

변동불거는 주역에서 따온 것으로 ‘변하고 움직여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변동불거를 올 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교수신문은 우리사회가 거센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고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과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시대적 메시지를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사회를 상징이나 하듯 평화의 왕으로 온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는 다르게 우리 사회의 금년 한 해는 모순으로 가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일터로 나갔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가족들의 눈가에 깊이 베인 상처를 남긴 채 눈물로 돌아왔다.

이런 일은 도처에서 일어났다. 이름 모를 수많은 삶의 현장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나라보다 더 나은 삶을 찾아 코리언드림을 꿈꾸면서 한국으로 이주한 이주민들 또한 죽음과 차별을 마주하고 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나 정답을 강요하면서도 맞출 수 없도록 출제된 불수능이 우리를 좌절하게 만든다. 수능은 모순이 너무 많이 드러나 폐기해야 할 것임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괴물이 돼 가고 있다.

개천에서 용나게 했던 교육은 사라졌다. 계층 이동의 통로였던 교육은 양극화와 결합하여 부모의 경제력과 비례하는 계층 세습의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이 국민을 섬기라고 뽑았던 이상한 대통령의 등장은 한국사회를 후퇴시키고 다가올 재앙을 예고하는 숨은 불씨였다.

연말을 정리하면서 사랑으로 넘실거려야 할 거리와 계엄과 내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망령들을 쫓아내기 위한 정의의 칼날이 대면하고 있다.

한 연예인은 소년 시기에 저지른 한 때의 잘못으로 인해 은퇴를 선언했다. 한 때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높은 양반들이 가장 슬픈 표정으로 초췌하게 법정을 들락거리며 자기 살길만을 도모하는 모습과 너무 판이하다.

모순은 사회복지현장인 아동그룹홈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내년도 중앙정부 사회복지 관련 예산은 증액 편성됐다.

특히 아동그룹홈 종사자 처우 개선을 위한 인건비를 20.2% 인상해 아동그룹홈 종사자 처우개선 의지를 분명하게 표명했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광주시는 그룹홈 종사자 인건비에서 시가 부담해야 할 예산을 무려 26.6%나 감액 편성해 이런 정부의 의지 표명에 찬물을 뿌렸다.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예산의 증가는 단순히 숫자의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아동그룹홈 돌봄체계의 체계적이고 질 높은 서비스 향상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 아동그룹홈 종사자들의 인건비는 동일한 자격을 요구받는 다른 아동 시설에 비해 형편없이 낮다. 명백한 차별이다.

이런 불평등한 처우는 아동 그룹홈 종사자들의 사기를 저하시켜 직업에 대한 회의와 함께 소진, 이직률 증가로 이어져 아동 돌봄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사회복지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대형 시설 중심의 돌봄 체계에서 탈시설화로 옮아가고 있다. 아동들은 가족이나 이와 비슷한 환경이나 지역사회에서 돌봄과 양육을 받아야 한다.

이에 적절한 기관이 아동그룹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아동 그룹홈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은 특수욕구아동들이 대부분이다. 복합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더욱 전문적이고 헌신적인 사회복지사들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재교육과 역량강화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텐데도 인건비를 26.6%나 깎았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보건복지부가 아동양육시설과 공동생활가정 종사자에게 서로 다른 임금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인건비에 차이가 발생하도록 조장한 행위는 ‘평등권을 침해한 차별행위’라 시정을 권고한 바 있다.

광주시는 아동그룹홈 예산을 원상복구해야 한다. 사람은 큰 은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망각하지만 작은 상처는 돌에 새기듯이 오래 간직하는 존재이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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