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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박 작가는 “그냥 작가로서 계속 성장해 나가면서 작품면에서도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저는 성장하고 있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며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싶고, 꾸준히 작업을 하는 작가로 기록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관념산수는 그의 작가인생인 16년째를 맞은 올해까지 지속하고 있다. 그의 부친은 화단에 널리 알려져 있는 ‘참새’ 시리즈의 대가 시원 박태후씨로 부친을 통해 한국화와 여백미를 자연스럽게 접하며 성장했다. 부친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모르나 그는 블랙의 색감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주인공은 2009년 프로작가로서 발을 내딛은 후 16년 동안 꾸준하게 활동을 펼쳐온 한국화가 설박(41·본명 박설)씨의 이야기다.
그의 작품은 산수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뒤로 갈수록 여백이 늘고 있다. 그의 여백은 삶의 본질과 궤를 함께 한다. 비움과 채움에 가닿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얼마나 더 힘든가를 일전 인터뷰에서 역설한 바 있다. 그는 “작품이나 삶 모두 여백은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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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어렵지만 저는 그냥 전통적인 것을 추구해 왔고, 단순해 보일 수 있는 평면 작업을 해왔습니다. 작업 외적인 것에서 더 많은 경험을 느꼈기에 작업 내부로 끌어 오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미술활동을 펼쳐온 것이 자부심을 더 가지게 된 부분 같아요. 해외 레지던시도 많이 다니고, 그곳에서 체험을 많이 하면서 새로운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였죠. 그러면서 조금씩 발전된 모습이 보여지게 됐구요. 앞으로 더 많은 작업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이는 그가 전통적인 것과 단순한 평면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작업 외적 영역에서 내적 작업으로 그것을 견인하려 했다. 한때 해외 레지던시를 집중한 이면 역시 작품 외부의 것들을 안으로 투영하기 위한 취지였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는 그의 한국화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 깃들어 있다. 보이는 한국화로 여겨지는 구상과 관념산수를 고수하다 근래들어 도형을 망라해 개념을 투영, 추상을 구축하는 등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한발짝 더 나아가 자신의 작품 세계가 확장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각에 공감을 표했다. 설치와 영상 등 다른 장르를 자신의 작업 영역 안으로 끌어들였고, 이에 따라 먹과 화선지로 재료가 한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생각을 가지고 다른 장르의 섭렵에 나섰다. 다른 장르는 그의 내재된 여러 사유들이 투영된 것인데, 이는 스펙트럼의 확장과 무관치 않다.
그가 설치를 택한 이면에는 평면의 깊이를 더 유도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 속 검은 산 안에 흑백대비된 색인 형광색 직선이 그어져 있는데 이는 큰 틀 안에서 보면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었던 셈이다. 그 스스로 생각하는 컬러 색감은 핑크나 노랑이었다. 이중 핑크가 압도적으로 눈에 띄었다. 여기서 핑크는 여성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색감이 조화되지 않을 수 있기에 과하게 색감을 넣지 않고 가위나 칼로 재단하면서 작업을 진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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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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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형태’ |
특히 화선지 종이들을 직접 찢었는데 현대인과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색과 모양의 경우 가위나 칼을 활용했다는 전언이다. 이는 뒤에 있는 산과 전통적인 산의 대비되는 느낌은 물론, 현대인과 자연의 부조화를 화면에서 조화롭게 보여지도록 하는 등 의미를 더하고 싶어서였다. 아울러 이질적인 두 사유를 한 작품에 녹여내려는 노력이자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기 위해 작업에 투영했다.
이와함께 그는 산수에 형광색 직선을 넣는 것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형광색 직선이 호불호가 있다는 시각 또한 숨기지 않았다. 관념산수만 선호하는 관람객이 있는가 하면, 그것에 조금 질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작가는 잘 알고 있다. 다만 일정 컬러 색감이 들어간 것은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기에 그리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작가는 형광색상이 들어갔다고 해서 잘못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형광색 구사를 놓고도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갈린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작업의)앞 단계하고 뒷 단계를 연결해 매개가 될 수 있기에 긍정적 요인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직선이 단순하게 지금 표출되고 있어 이 직선 후가 기대된다는 설명에 대한 공감을 빠뜨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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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렁한 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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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개의 웅덩이’ |
그도 이제 작가로서 16년 차가 넘어서면서 작업에 대한 의구심과 정체, 부담감을 여전한 극복과제들로 꼽았다.
그의 작업은 세 시기로 나눠 접근할 수 있다. 제1기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로 북경레지던시가 포함되며 1년을 북경 현지에서 보내던 시기였다. 그에게는 즐겁고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하던 때로, 개인전을 활발하게 열던 무렵이었다. 연작 ‘어떤 풍경’과 ‘무제’ 등이 작업됐다. 제2기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이며, 작품 ‘더 큰 풍경’과 ‘불완전한 풍경’ 등을 하던 무렵으로 미디어와 설치, 영상, 비디오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할 때였다. 형광색 직선이 들어가던 작품이 이 시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제3기는 2020년부터 현재까지이며, 추상작품들의 작업이 이뤄졌다. 감성이 담긴 작품의 제목이 구사돼 여러 연상을 불러 일으켰다.
작업시 복잡한 생각이 들 때마다 땀을 흘리면 그런 생각이 조금 치유된다는 그는 다시 한번 작업 16년째를 맞은 시점에서 아트적 삶에 대한 청사진을 이야기하는 등 앞으로 계획을 들려주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그냥 작가로서 계속 성장해 나가면서 작품면에서도 성장하는 시간이었죠. 저는 여전히 완성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그냥 죽을 때까지 우리는 완성형의 인간이 될 수 없다고 봐요. 그러니까 완벽한 작품을 뽑아 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성장하고 있는 단계라고 볼 수 있죠.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싶고, 꾸준히 작업을 하는 작가로 기록됐으면 합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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