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익살스럽게 다가온 입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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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익살스럽게 다가온 입추

서금석 전남대학교 사학과 강사

서금석 전남대학교 사학과 강사
한눈판 사이에 입추가 지나가 버렸다. 7월 17일 폭우로 인한 폭염 속 수해 복구가 아직도 멀었다. 매년 양력 8월 7일 혹은 8일이 입추다. 올해 입추는 8월 7일이었다. 무더위 철이다. 멀찍이서 봄을 알린다는 입춘도 마찬가지였다. 따뜻한 봄바람을 몰고 온 줄 알았다면 큰 낭패다. 차디찬 겨울 복판에 입춘이 자리 잡았다. 지난 2월 3일 입춘도 한겨울이고, 양력 8월 7일 입추도 여름 가운데 있다. 무더위 철, 입추가 이렇게 익살스럽게 다가왔다. 아마 입추도 머뭇거리며 민망할 것 같다.

입추가 어떤 해는 8월 7일이고, 또 어떨 때는 8월 8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 정수일로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1태양년은 365.24219일 정도다. 시계로 따지면 지구가 태양을 공전해 다시 그 자리에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365일 5시간48분46초다. 소수점으로 인해 각각의 절기 날짜는 하루 이틀 차가 발생한다. 평소 2월이 28일이다가 어찌어찌해서 29일인 때가 있다.

1태양년 중, 365일 이후의 시간인 5시간48분46초를 대략 6시간으로 잡고, 4년마다(6시간×4년) 24시간 하루를 만들어 2월에 그 하루를 보태 준다. 참 기막힌 계산이다. 31일이 있는 다른 달과 비교하면, 2월은 항상 서러웠을 것 같다. 4년마다 하루를 더해줘서 그 서운함을 달랬다. 우리가 알고 있는 1년의 길이를 이렇게 나누고 보태고 시간을 만들어 낸 것을 보면, 마치 마술 같기도 하고, 속임수 같기도 하다.

중국 화북 지방에서 24절기가 자리 잡기까지 시간도 곤혹을 치뤘다. 30시간과 24시간 체제는 한동안 경쟁했다. 결국 하루와 1년을 각각 2등분을 하고, 또 3등분도 그리고 4등분을 해도 무난한 24시간 질서가 승리했다. 사람의 생체리듬과 작물을 키우고 수확하는데 24시간 체계가 가장 무난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완벽하지는 않았다. 24절기 중 춘분과 하지, 추분과 동지 등 4개의 절기만 천문학적인 계산에 맞추고, 나머지 절기는 1년의 길이를 24로 나눠 날짜를 잡았다. 이 때문에 시시때때로 변화무쌍한 날씨 변화는 24절기와 일치할 수가 없다. 절기는 상징화됐다. 과거의 시간은 박제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간이 창조된다.

그래도 의미가 크다. 애초 인류가 시간을 만들 때 이유는 분명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옛 사람들이 그 많은 절기를 만들고 명절을 쇠고, 제사를 지냈던 이유는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시간을 만들고 모임을 가졌다. 함께 먹고 즐기고 서로를 기억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질서가 됐다. 통치자는 이 그림을 놓치지 않았다. 동·서양의 모든 위정자는 시간을 통일함으로써 땅덩이 안의 백성을 통치할 수 있었다.

8월 들녘 농부의 손발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무더위 철이건 장대비가 쏟아지는 때든 간에 가을 추수까지 한시름도 놓을 수가 없었다. 여름 잡초로 가을 수확을 망칠 수 없었다. 땡볕에 스러지고, 폭우에 떠내려가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논밭에 있었다. 기력은 떨어지고 먹을 것도 부족했던 시절, 행여 잊을세라 그사이 명절을 많이도 만들어 놨다. 유두절을 시작으로 칠월 칠석과 백중이 들어있다. 여름 절일 대표격인 삼복(三伏)도 빠질 수 없다.

올해 말복을 좀 이르다. 입추 후 첫 번째 경(庚)일이 말복이다. 입추가 8월 7일이고, 8월 9일이 경술(庚戌)일로 입추 후 첫 번째 경(庚)일이다. 사실 삼복(三伏)은 폭염 주의보였다. 복날에 쉬라고 관리들에게 휴가를 줬다. 쉬는 날이고 보신하는 날이다.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쉬는 것이 보신이다. 그 충전된 몸으로 여름 농사 버텼다.

요즘 복날에 삼계탕이 대세이다. 양계업 발달과 발맞췄다. 백숙과 같은 닭고기에서 삼계탕으로의 진화는 한약재인 산삼과 닭고기의 절묘한 결합으로 탄생했다. 한국에서 몸보신 마케팅이 성공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양계산업의 발달은 닭고기 수요를 늘렸다. 처음엔 닭고기에 무게를 두고, ‘계삼탕’이라는 메뉴가 등장했다. 50년대 말 얘기이다. 그러나 별 재미를 못 봤다. 전략이 틀렸다. 몸보신 키워드는 ‘삼’이다. 그래서 60년대에 들어와 같은 음식에 이름을 바꿨다. ‘삼계탕’은 대박 났다. 한국의 대표 음식이 됐다. 계삼탕이라는 용어는 유행하지는 못했지만, 간간이 들린다. 1980년대에 편찬된 ‘한국의 세시풍속’에도 계삼탕이 소개되고 있다.

‘고려사’ 달력편 입추 후 15일 중, 초후(5일)는 서늘한 바람이 분다. 차후(5일)에는 천지에 가을 기운이 돈다. 그리고 말후(5일)에 곡식이 익어간다. 내용상으로 완연한 가을이다. 고려가 중국의 달력을 가져다 썼으므로 고려 날씨가 중국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입추는 가을이 아니다. 마치 저기 멀리에서 가을이 희미하게 손짓하는 것과 같은 때다. 그런데도 우리는 머뭇거리며 찾아와준 입추를 반기고 믿는다. 기다림은 희망이다. 가을바람 곧 분다.
광남일보 기자 @gwangnam.co.kr         광남일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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