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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들은 것도, 누군가의 만우절 장난도 아닌 실화라는 걸 확인했을 때는 단 몇 초 사이에 수만 가지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놀람, 기쁨, 설렘, 존경, 기대, 자랑스러움 그리고 부러움까지. 마지막에 든 ‘부러움’이라는 쌉싸름한 감정 끝에 떠오른 속담이 바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였다.
속 좁은 밴댕이 소갈딱지가 따로 없다며 한강 작가에 관한 기사를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작가가 몇 년 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건 이미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그 당시에도 기사는 물론 서점이나 지하철 등 고개만 돌리면 ‘채식주의자’의 수상 소식과 광고가 도배를 하다시피 했었다. 그때도 광고를 보며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쓰던 필자는 현생에 쫓겨 집에 가면 A4 한 장은커녕 100자도 작업하지 못하고 노트북을 닫아버리기 일쑤였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한강 작가에 관한 내용을 조금 더 검색하다 보니 1994년 ‘붉은 닻’으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소설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됐다. 30여년 동안 소설가라는 외길을 꿋꿋이 걸어왔기에 오늘날의 성과로 이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의 축하가 이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작가의 시간과 노력을 폄훼하는 이들이 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건 노벨 가치의 추락이며 문학 위선의 증명이고 역사왜곡의 정당화란다. 동양권에 꼭 수상을 줘야 했다면 중국의 옌렌커가 받았어야 했다며 품격과 감동을 운운한다. 그러면서 한림원 심사위원들의 정치색을 의심했고, 명단을 늘어놓고 선풍기를 돌렸을 거라며 깎아내리거나 한강 작가가 여자라서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런 말을 쏟아낸 게 다른 누구도 아닌 같은 작가라는 사람이라 더 충격이었다. 다른 이는 더러운 망상을 갖고 쓴 글이라며 막말을 쏟아냈다. 5·18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의 내용이 역사 왜곡이라니.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지명하면서 “소년이 온다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했다. ‘소년이 온다’는 단순히 5·18을 소재로 다룬 것이 아니라 실제 인물인 문재학군과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와 작업한 소설이다.
5월 항쟁 당시 광주상고 1학년이었던 문재학군은 최후항쟁이 벌어진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기 위해 현장에 남아있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어린 나이에 민주주의를 외치다 숨졌지만 그의 모친이 여전히 살아있고 그 외에도 수많은 5·18 희생자와 증인들이 현재하고 있다. 그런데도 역사 왜곡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사상과 이념이 다르면 이렇게까지 사고의 흐름을 꽉 막히게 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됐다.
5·18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며 치욕적인 역사다. 차고 넘칠 만큼 많은 사진과 영상, 증인이 있고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살아있는 역사란 말이다. 그걸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있었던 일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려는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이 지긋지긋한 이념의 대립은 대한민국이 설립되기 전부터 아니 조선시대, 고려시대, 삼국시대에도 당파싸움으로 존재했다. 설령 같은 의견을 갖고 있더라도 당파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견은 삼킨 채 이념만을 쫓아가던 무리는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여전하다.
아무리 역사 왜곡이라고 우기고 작품을 폄훼해도 5·18은 사실이며, 세계가 인정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독설을 내뱉은 게 단순히 이념 때문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이룬 이를 향한 부러움 때문인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이념이든 저변에 깔린 부러움 때문이든 남의 집 귀한 잔치에 재를 뿌려서는 안 된다. 재를 뿌리는 양과 횟수가 늘어날수록 양손과 온몸에 잿가루를 뒤집어쓰는 건 바로 자신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