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 협치학교가 찾아간 두 인연
검색 입력폼
전문가칼럼

학자 협치학교가 찾아간 두 인연

김진구 광주교육시민협치진흥원장

김진구 광주교육시민협치진흥원장
[아침세평] 인연(因緣)이란 단어는 스친 바람 같은 수채화 느낌인데, 필연(必然)은 단단하게 굳어진 유화 같다.

그래서 인연은 되새겨 보는 순풍의 결말에 이르고, 필연의 결과는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주하게 된 인연과 회피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필연을 가지고 있다.

한 개인에게 필연은 운명이고 팔자라 치지만, 인연은 예측되지 않는 미래와 연결되는 것 같다.

중외공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숭모비와 백범 김구 선생과 인연이 있는 보성군 쇠실마을을 광주교육 학·자협치학교가 찾아갔다.

광주 중외공원(옛 어린이대공원)에는 권총을 든 안중근 의사 동상과 숭모비가 있다. 이 동상과 숭모비가 함께 자리하게 된 사연이 극적이다.

안중근 의사는 남도 땅을 밟은 적이 없는데도 5개의 동상이 있어 전국에서 가장 많다. 1961년 광주공원에 세워진 ‘대한의사안공중근숭모비’는 전국 최초다.

이 숭모비는 광주공원 내에서도 한 번 옮겨졌는데, 1987년 다시 중외공원으로 이전 수모를 겪은 후 1995년에 돌연 사라졌다.

1995년은 광복 50주년이 되는 해로 조선총독부였던 중앙청을 폭파하는 등 대대적인 일제 청산 작업이 있었는데 광주에서도 안중근 의사 동상 건립위가 구성됐다. 그런데 동상은 제작됐으나 예산 부족으로 기단과 좌대를 만들 수 없게 되자 숭모비를 내리고 그 위에다 동상을 세웠다. 5t 무게의 거대한 숭모비는 이러한 사정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당시 국제고 역사교사였던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순국 100주년을 기념go 다시 안중근 의사 숭모비를 광주공원에 복원하자. 항일 독립의 정신을 민주화운동으로 승화시킨 지역민의 정체성과 안중근 의사의 이토 격살은 잘 어울리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1987년 어린이대공원으로 이전 당시 비문을 찾아내야 한다. 전말을 아시는 분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다.”

그 후 2019년 2월 한 언론에서 ‘전국 제1호 안중근 숭모비가 사라졌다’는 특집기획 기사를 썼는데 나주에 사는 이근준 씨가 우연히 식당에서 이 기사를 읽게 됐다.

이 씨는 3년 전 조경석이 필요해 석재상을 찾았는데 ‘안중근’이 전서체로 새겨진 방치된 비석을 봤던 기억이 떠올렸다. 석재상을 찾아가 잃어버린 숭모비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비로 숭모비를 매입해 광주시에 기증했다.

이렇게 중외공원에서 사라진 지 24년 만인 지난 2019년 재건립돼 동상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이 숭모비가 어떻게 나주시 금천면의 석재상으로 옮겨졌는지는 지금도 오리무중이지만 이렇게 동상과 숭모비가 마주보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백범은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 육군 중위 스치다가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것으로 판단해 타살해 체포됐다.

인천 감옥에서 수감 중 1898년 탈옥해 은거지를 찾다가 보성군 득량면 쇠실마을(금곡)에 들어가 김두호라는 이름으로 은거하게 된다. 쇠실마을은 분화구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여서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지형이고, 안동 김씨 집성촌이었다.

가난한 유월 보릿고개 때 22살 뜨내기 김두호를 받아 준 사람은 마을 가장 안쪽에 사는 종친 김광언이었다.

45일간 머문 백범에게 선씨 부인은 팔낭을 선물했고, 백범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답례로 보던 책 ‘동국역대기’와 “이별은 어려워라∼ 꽃나무 한 가지를 꺾어 절반씩을 나눠, 한 가지는 종가댁에 남겨두고, 한 가지는 가지고 떠납니다”란 한시 ‘이별난’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광복 직후 귀국한 백범은 민족의 지도자가 돼 48년 만인 1946년 9월에 자신을 숨겨준 쇠실마을을 다시 찾았다.

짧은 기간 머물렀지만 그 인연을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고, 직접 보은의 답방을 한 것이다. 주민들은 도로를 닦고 솔문을 세워 뜨겁게 환영했다고 한다.

지금도 김광언의 후손들은 그 집을 관리하고 있으며 ‘동국역대기’를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추모비와 은거기념관을 건립하여 백범과 쇠실마을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의 시민협치진흥원에서는 학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학·자협치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주중에는 학부모님들과 주말에는 학부모님과 자녀가 함께 동행했다.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절절한 인연을 간직한 역사와 문학 현장을 찾아갔다. 안내 선생님의 훌륭한 해설을 들으면 그냥 지나쳤던 것들도 역사적인 산물로 다가온다.

우리 가까운 주변에도 수많은 배움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많이들 놀란다. 광주가, 남도가 우리 아이들의 교실이다.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