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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은 시인 |
시인은 1936년 전남 보성 출생으로 전남대와 동 대학원을 거쳐 충남대 대학원을 수료한 뒤 2001년까지 모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들을 양성해 왔으며 정년 후 이미 고인이 된 문병란 시인(전 조선대 교수)과 한때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으나 그 이후 지난해 10월 현대문학사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제1회 김현승 시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거의 마지막 문단에서의 공식적 족적이 됐다.
그는 1964년 다형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現代文學)에 시 ‘제3관장’(第三廣場)을 비롯해 ‘산책’(散策), ‘나의 반란’(叛亂)을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시단에 데뷔해 대표작 ‘보리타작(打作)’ 등 향토적·토속적 가락을 토대로 한 남도의 서정과 정한을 시속에 투영한 작품들을 남겼다. 다분히 민속적 요소를 포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향토적 정서와 토속적 가락을 지켜온 소리의 시인이자 민중의 삶과 숨결을 마당굿처럼, 판소리처럼 살아 생동하는 가락으로 찾아내 ‘민속시(民俗詩)로 집대성해낸 한국 최초의 민속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가운데 생명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친숙한 남도 정서를 아름다운 시어와 서정적 감성의 언어로 시편들을 풀어냈으며, 존재에 대한 탐구와 생동감 넘치는 삶에의 애정을 가감없이 노출해 왔다.
손광은 시인은 숭일고 교사를 역임한데 이어 전남대 문리대에서 재직했으며 광주시문인협회와 한국시문학회 및 한국언어문학회, 다형김현승시인기념사업회장 등의 회장을 맡았으며, 한때 원탁시 동인으로 활동을 펼쳤다. 시집 ‘파도의 말’로 전라남도문학상과 제3회 광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제1회 보성문학상 등 다수 수상했다. 전남대 재직 시절 국어국문학과장과 인문과학연구소장 등을 두루 역임했고, 옥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시집 ‘내 마음속에 눈부신 당신’, ‘땅을 딛고 해가 뜬다’, ‘민속의 숨결 신명을 풀어라’, ‘나의 반란’, ‘철마는 달리고 싶다’ 등 10여권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대전에서 치과를 운영 중인 딸 지형·지원씨가 있으며 빈소는 대전 유성선병원장례식장(VIP2호실)이다. 발인은 10일 낮 12시이며 장지는 세종은하수공원.
다음은 그의 대표작인 시 ‘보리타작’ 전문
보리타작
손광은
어릴적 머슴인 내 아버지는
마당 복판에 무더위를 불러들인
보리단을 놓아둔다
까실까실한 사슬이 매달린 보리,
단정히 부수지 않고
손가락을 대본다.
실한 머슴은 곁에 있는
농주를 마시며
푸른 보리를 생각한다.
풀잎 같은 풀잎이었다가
풀잎 같은 보리였다가
풀잎 같은 보리국물을
겨울에는 마시며,
지금은 풀잎같이
의식을 일으켜
비밀의 구조를 갖고 누렇게 살아 있는,
보리를 술잔에 비쳐보곤 히죽이 웃으며,
‘여 때리라
저 때리라‘
거만스럽게 삐걱이며
도리깨질을 하면서
잠 깊은 누런 이마를
후려친다. 후려쳐....
서성이는 어머니는
빗자루를 치켜들고
왔다, 갔다,
튀어나는 보리알을 쓸면서
신비로운 내 시선 사이로 지나간다.
큰물소리가 지나간다.
곁에 가던 먼지가
불타듯 연기되어 깔리면서
대낮이 무너진다.
모든 것이 지나가며 무너진다.
풀잎이 출렁거리듯
새로운 혁명이 부르는 흔들림
새로운 파멸의 부정不正처럼
물살 지는 가슴을
실한 머슴은 들여다보면서
‘여, 여, 저, 저’
들고 치고, 살짝 놓고 치고
소리를 만들면서
먼지가 소리를 만들면서
마을을 울리던
도리깨질을 하면서
‘여 안때리고
어데 때리노
복판 때리라
가에 때리라‘
도리깨질을 하면서
머슴은 머슴인 아버지를
머슴으로 길들였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