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들리는 그 큰소리는 정말 땅을 들썩들썩, 마음을 쿵쾅쿵쾅! 씩씩하게 백두산과 태백산을 넘나든 서슬을 느꼈고 힘차게 세상을 헤쳐나간 굳센 힘을 배웠다.
느끼고 배우기만 했지 몸에 스며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호랑이 소리는 더 큰 세상을 그리게 했고 여러 가지 꿈을 품게도 했다. 호랑이 소리가 있어서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자란 양림동에는 사직단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다시 만들어뒀다.
‘사직(社稷)’은 나라를 뜻하기도 하지만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던 곳이었다. 다시 말해 나라나 민족의 평안을 바라고, 안녕의 고마움을 드러내던 곳이다.
우리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일본은 사직단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동물원을 세웠다.
우리 문화를 뭉개 아주 없애버리려는 속셈이었다. 나는 그 동물원에 살았던 호랑이 덕분에 아침마다 용기와 기상을 생각으로라도 품을 수 있었다.
양림동에서도 다른 동네처럼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등의 놀이를 했다.
이런 노랫말로 비롯하는 노래도 있다. ‘자전거 탄 풍경’이 부른 ‘보물’이다. 옛날 개그콘서트에서 ‘마빡이’가 나올 때 틀어준 노래라서 아는 사람은 안다.
숨바꼭질이라고도 하는 술래잡기, 술래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이렇게 외치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인 1930년대의 술래는 ‘바루 뗑, 인경 뗑, 삼경 전에 고구마 떴다, 암행어사 출두야’ 이렇게 소리를 질렀단다. 놀이 속에 가락이 있었다는 말이다.
고무줄놀이, 주로 여자아이들이 했는데 남자아이들은 ‘고무줄 끊기 놀이’라 해야 맞다.
‘산골짝의 다람쥐 아기 다람쥐’하는 노래 부르며 줄을 넘었고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는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는 노래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하는 무섭고 끔찍한 노래에 맞춰 고무줄놀이를 했다.
말뚝박기와 말타기는 비슷한데 주로 가위바위보로 이기고 지는 일을 따졌다. 가위바위보는 ‘안 내면 술래 가위바위보’ 하며 가락을 붙여 논다. 망까기는 비석치기를 말한다.
놀이는 일단 재밌어야 한다. 재밌어야 사람이 모이고, 재밌어야 자주 한다. 자주 하면 배운 사람들은 그걸 ‘문화’라 부른다.
문화는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억지로 이어질 수는 없다. 요즘 ‘돈’을 앞장세우니 하는 말인데 문화 잘 굴러가면 돈이 흐른다. 놀이든 문화든 가락이나 노래는 빠질 수 없다.
축제나 페스티벌, 우리말로 잔치다. 잔치가 끝나고, 뒤에 서 있을 때 들리는 소리가 있다.
‘이거 왜 했지? 재미도 없는데’ 이런 투덜거리는 소리가 나오거나 ‘시설만 번지르르하면 뭐해?’ 이런 짜증스런 말이 들리거나 ‘이런 돈 차라리 시민들에게 나눠주지’ 이런 현실(?)의 소리까지 들리면 그 잔치는 시쳇말로 ‘죽 썼다’는 말이다.
다음에 사람들이 찾지 않음은 마땅하고, 그 잔치는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진다는 예언들(?)이다.
‘히야, 재밌다. 엄청나지?’ 젊은이들의 이런 호들갑, ‘돈이 아깝지 않아’ 나이 드신 분들의 돈 이야기, ‘잘 놀았어’ 하다못해 이런 말이라도 들리는 잔치는 이미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알려줬고 다음에도 틀림없이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그 잔치는 문화로 자리 잡는다.
문화로 자리 잡을 사운드파크 페스티벌이 가을 달 둥그러질 때 사직단이 있는 양림동에서 열렸다.
걷다가도 흥얼거리고, 말을 나누다가도 흥얼거리는 남유진 감독이 달빛처럼 은은하게 하지만 반짝반짝 신나게 만들었다.
가락 하나, 노래 하나로 옛 생각 떠올리기도 하고, 울게도 웃게도 만든다. 일할 때 흘린 땀은 보람이고, 놀면서 흘린 땀은 쉼이다. 사운드파크 페스티벌에 모인 사람들은 노래에 몸 흔들며 쉬었다. 식구들과 함께 닭튀김(치킨)도 먹고, 동무들과 어울려 맥주도 곁들이며 노래로 밤을 즐겼다.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