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두대간’ |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거나 알아보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이번에 다룰 예술가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나 싶다. 주인공은 일흔을 맞은 올해 화업 50년을 맞은 전남 영광 출생 현암 홍정호 작가(한국화·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가 그다. 그의 화실은 50평 규모로 양동시장을 막 지나면 골목길 대로변 세기빌딩에 자리하고 있다. 문하생들과 함께 쓰는 화실치고는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홍 작가가 미술과 대면한 것은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김승환)을 만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미술 선생님은 아니셨지만 동양화를 하셨는데 운무가 낀 환상적이고 몽환적 작품이 교실에 걸려 있었는데 그때 그 동양화 한점이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돼 그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을 끼친 듯하다. 서당을 접하면서 먹을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동양화에 매료됐던 셈이다.
이처럼 그는 점점 미술에 깊이 빠져 들었지만 집안 분위기는 그가 미술을 하는데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6남매였던 그는 위에 형과 동생이 오히려 미술을 잘해 소질이 있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화가의 꿈을 접게 된다.
![]() |
‘백두대간-가을산’ |
![]() |
‘백두대간-희망’ |
고생스러운 예술가의 삶보다는 평안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군 입대 전 독학으로 한국화를 익혔다. 그러다 잠시 붓을 놓게 된다. 군대를 입대해야 해서였다. 군 제대 후 그는 다시 붓을 잡았다. 연진회와 인연이 닿아 사군자에 집중했다. 이미 사군자 이전에 수채화를 하던 가락이 있어 혼자 탐구하며 그림의 깊이를 더해갔다. 화단의 모든 사람들은 스승을 두는 문화가 있었지만 홍 작가는 스승보다는 독자적인 길을 택했다. 독자적으로 그림을 하다보니 계파에 휩쓸리지 않아 자유로운 작업과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자연을 벗 삼아 스케치를 하며 자연의 질서를 화폭에 담는데 주력했다. 그는 이때 ‘어떠한 생각이 한곳에 모이면 통한다’는 사실을 깨쳤다고 전한다. 이것이 그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는 점 또한 부인하지 않았다.
“스스로 화폭을 일궈가지 않으면 안 되기에 혼자 외로움과 싸울 수 밖에 없었죠, 그러다보니 변화에 대한 두려움마저 없어지더군요. 그러면서 저 자신만의 화폭을 일굴 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홀로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여오면서 첫 개인전은 마흔여섯이 되던 2000년에서야 열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남봉미술관에서 70여점을 출품한 가운데 일생일대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선보이는 자리를 가졌다. 그가 화단에 화가로 정식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다른 화가들에 비하면 한참 늦은 늦깎이 전시였다.
더 빨리 전시를 열 수 있었으나 그림시장이 요동치면서 그는 전시회보다는 학원 운영을 통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첫 개인전이 늦어진 이유다.
![]() |
‘빛고을’ |
혼돈이 마무리되자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방황의 시기와 겹친 제1기가 가자 제2기 회화가 그를 찾아왔다. 이때는 수묵과 채색이 혼용되면서 한층 더 농익은 화풍을 일궈가던 시기였다.
“현재 색을 단순화시키는데 집중했습니다. 봄이라면 관념을 봤고, 초록이라면 많은 설명 대신, 색상을 통해 자연의 함축적인 정신을 담아냈어요. 그래서 거기에 연관된 색채를 구사하는 한편, 함축된 정조를 투영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색이 주는 이미지로 소통하는데 신경을 많이 쓴 거예요. 이를테면 겨울하면 주된 색채가 흰색인데 이를 단순화시키면 감정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적용한 셈이죠.”
그는 이같은 단순화 작업이 작품에 대한 해석이나 느낌을 훨씬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 선명해질 수 밖에 없고, 작가의 의도를 감상자들이 쉽게 이해하며 접근할 수 있다는 소신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제3기를 맞았다. 그에게 제3기는 201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규정할 수 있다. 그는 추구하고자 하는 대상들을 모두 단순화하는데 몰입했다. 함축을 더 강조했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화면의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흑백을 놓고 강함과 약함을 구사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대비성을 섬세하게 고려한 이유에서였다. 감상자가 더 섬세하게 느낌을 가져가도록 하기 위한 의도였다.
거기다 단순화는 그냥 단순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깊이나 몰입감을 더하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확실한 대비감으로 인해 화면이 반추상적으로 비쳐줬지만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는 즐거움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고, 어느 정도 확신했는데 그게 맞아떨어졌다고 읽혔다. 그는 예술을 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돼야 그 예술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손가락질을 안 받고 존경을 받는 작가 되는 게 꿈이죠. 선배나 후배들에게 인간적인 면에서 좋은 이미지의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그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 화폭을 일궈왔지만 백두대간에 대한 황홀감을 표현하고픈 속내를 내비쳤다. ‘백두대간’이라고 하는 타이틀의 작품을 해 보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근래에 그는 ‘백두대간을 담다’(2021.4.7∼30 금봉미술관), ‘백두대간-봄의 왈츠’(2023.9.24∼10.28 함평 잠월미술관), ‘백두대간의 사계’(2023.11.6∼12.31 전남대병원 갤러리), ‘백두대간의 위용’(5.8∼15 서울 인사아트센터) 등 관련 전시를 진행한 바 있다.
![]() |
‘운일암반일암’ |
![]() |
홍정호 한국화가는 “손가락질을 안 받고 존경을 받는 작가 되는 게 꿈”이라면서 “선배나 후배들에게 인간적인 면에서 좋은 이미지의 작가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
이와함께 농염을 기조로 한 채묵의 효과적인 운용과 강렬한 필선의 다양한 구사를 통해 대간의 생동감을 극대화하는데 역점을 뒀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백두대간을 단적으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앞으로 특별히 무언가를 정해놓기보다는 내재된 것들을 표현하는 동시에 총체적으로 자연에 접근, 이를 표현해보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지난 5월 개인 부스전을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가졌기에 올해는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작업을 할 겁니다. 다만 단독 개인전을 서울에서 열지 못해 내년쯤 기회가 닿으면 ‘백두대간’ 등을 주제로 열어볼 계획을 잡고 있죠.”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