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 단순화한 화면 구축…존경받는 작가 되는게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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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예술인

"색채 단순화한 화면 구축…존경받는 작가 되는게 꿈"

[남도예술인]한국화가 홍정호
46세 늦깎이로 첫 개인전…스승없이 홀로 화업 50년
연진회와 인연 본격 작업 시동, 백두대간 화폭 주력
색상 통해 함축적 자연 조망·경쾌한 조형미 등 집중

‘백두대간’
50년을 한곳을 바라보며 한길을 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욱이 스승이 있다든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다든가 하면 든든하기라도 할 터이지만 오로지 자신을 믿고 달려온 길이었던 것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세상을 탓하고, 자기에게 조건이 갖춰지지 않거나 열악하면 남을 탓하거나 환경을 탓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에 처한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해 발전의 자양분이나 에너지로 삼는 장인들은 의외로 주변에 많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거나 알아보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이번에 다룰 예술가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나 싶다. 주인공은 일흔을 맞은 올해 화업 50년을 맞은 전남 영광 출생 현암 홍정호 작가(한국화·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가 그다. 그의 화실은 50평 규모로 양동시장을 막 지나면 골목길 대로변 세기빌딩에 자리하고 있다. 문하생들과 함께 쓰는 화실치고는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홍 작가가 미술과 대면한 것은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김승환)을 만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미술 선생님은 아니셨지만 동양화를 하셨는데 운무가 낀 환상적이고 몽환적 작품이 교실에 걸려 있었는데 그때 그 동양화 한점이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돼 그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을 끼친 듯하다. 서당을 접하면서 먹을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동양화에 매료됐던 셈이다.

이처럼 그는 점점 미술에 깊이 빠져 들었지만 집안 분위기는 그가 미술을 하는데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6남매였던 그는 위에 형과 동생이 오히려 미술을 잘해 소질이 있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화가의 꿈을 접게 된다.

‘백두대간-가을산’
‘백두대간-희망’
특히 외삼촌이 서예에 조예가 깊었으나 생활에 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지 자녀들이 미술 등 예술을 하려 하는 것을 반대했다. 아버지는 외삼촌과는 친구지간이었다. 아버지 역시 교사를 역임했지만 6·25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길게는 하지 못했다. 그러다 정치의 길로 빠져들면서 유년기에 매우 어렵게 성장해야 했다. 이래 저래 그림에 대한 관심이 집안에 있을 리 만무했다.

고생스러운 예술가의 삶보다는 평안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군 입대 전 독학으로 한국화를 익혔다. 그러다 잠시 붓을 놓게 된다. 군대를 입대해야 해서였다. 군 제대 후 그는 다시 붓을 잡았다. 연진회와 인연이 닿아 사군자에 집중했다. 이미 사군자 이전에 수채화를 하던 가락이 있어 혼자 탐구하며 그림의 깊이를 더해갔다. 화단의 모든 사람들은 스승을 두는 문화가 있었지만 홍 작가는 스승보다는 독자적인 길을 택했다. 독자적으로 그림을 하다보니 계파에 휩쓸리지 않아 자유로운 작업과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자연을 벗 삼아 스케치를 하며 자연의 질서를 화폭에 담는데 주력했다. 그는 이때 ‘어떠한 생각이 한곳에 모이면 통한다’는 사실을 깨쳤다고 전한다. 이것이 그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는 점 또한 부인하지 않았다.

“스스로 화폭을 일궈가지 않으면 안 되기에 혼자 외로움과 싸울 수 밖에 없었죠, 그러다보니 변화에 대한 두려움마저 없어지더군요. 그러면서 저 자신만의 화폭을 일굴 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홀로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여오면서 첫 개인전은 마흔여섯이 되던 2000년에서야 열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남봉미술관에서 70여점을 출품한 가운데 일생일대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선보이는 자리를 가졌다. 그가 화단에 화가로 정식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다른 화가들에 비하면 한참 늦은 늦깎이 전시였다.

더 빨리 전시를 열 수 있었으나 그림시장이 요동치면서 그는 전시회보다는 학원 운영을 통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첫 개인전이 늦어진 이유다.

‘빛고을’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이력도 쌓여갔다. 벌써 프로작가로 13차례의 개인전과 6차례의 부스전, 450여회의 그룹전, 운영 심사 60여회가 더해졌다. 성인이 된 1975년부터 2000년까지는 그에게 개인적이든, 시대적이든 혼돈의 시기로 설명된다. 미술이 계기가 아니라 붓을 잡은 수묵이 본격화되던 시기였지만 방황이 길었다. 그중에 자신의 삶에서 돌출된 것은 그림이었다.

혼돈이 마무리되자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방황의 시기와 겹친 제1기가 가자 제2기 회화가 그를 찾아왔다. 이때는 수묵과 채색이 혼용되면서 한층 더 농익은 화풍을 일궈가던 시기였다.

“현재 색을 단순화시키는데 집중했습니다. 봄이라면 관념을 봤고, 초록이라면 많은 설명 대신, 색상을 통해 자연의 함축적인 정신을 담아냈어요. 그래서 거기에 연관된 색채를 구사하는 한편, 함축된 정조를 투영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색이 주는 이미지로 소통하는데 신경을 많이 쓴 거예요. 이를테면 겨울하면 주된 색채가 흰색인데 이를 단순화시키면 감정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적용한 셈이죠.”

그는 이같은 단순화 작업이 작품에 대한 해석이나 느낌을 훨씬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 선명해질 수 밖에 없고, 작가의 의도를 감상자들이 쉽게 이해하며 접근할 수 있다는 소신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제3기를 맞았다. 그에게 제3기는 201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규정할 수 있다. 그는 추구하고자 하는 대상들을 모두 단순화하는데 몰입했다. 함축을 더 강조했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화면의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흑백을 놓고 강함과 약함을 구사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대비성을 섬세하게 고려한 이유에서였다. 감상자가 더 섬세하게 느낌을 가져가도록 하기 위한 의도였다.

거기다 단순화는 그냥 단순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깊이나 몰입감을 더하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확실한 대비감으로 인해 화면이 반추상적으로 비쳐줬지만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는 즐거움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고, 어느 정도 확신했는데 그게 맞아떨어졌다고 읽혔다. 그는 예술을 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돼야 그 예술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손가락질을 안 받고 존경을 받는 작가 되는 게 꿈이죠. 선배나 후배들에게 인간적인 면에서 좋은 이미지의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그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 화폭을 일궈왔지만 백두대간에 대한 황홀감을 표현하고픈 속내를 내비쳤다. ‘백두대간’이라고 하는 타이틀의 작품을 해 보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근래에 그는 ‘백두대간을 담다’(2021.4.7∼30 금봉미술관), ‘백두대간-봄의 왈츠’(2023.9.24∼10.28 함평 잠월미술관), ‘백두대간의 사계’(2023.11.6∼12.31 전남대병원 갤러리), ‘백두대간의 위용’(5.8∼15 서울 인사아트센터) 등 관련 전시를 진행한 바 있다.

‘운일암반일암’
홍정호 한국화가는 “손가락질을 안 받고 존경을 받는 작가 되는 게 꿈”이라면서 “선배나 후배들에게 인간적인 면에서 좋은 이미지의 작가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백두대간은 전통화법을 탈피해 실험적 화면을 구사한다. 작가 내면의 세계를 맑고 선명하게 풀어낼 뿐 아니라 백두대간 산맥을 타고 흐르는 정신적 기운과 사계의 변화 및 천태만상의 기암괴석, 그리고 삶의 다채로운 양상들이 투영돼 백두대간의 기운생동한 힘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관념적이고 주관적으로 대간에 내재된 이미지를 재해석했고, 채묵 톤의 파장 길이를 적절히 대비시켜 화면의 긴장감과 경쾌한 조형미를 극명하게 표현하는 데 열중했다.

이와함께 농염을 기조로 한 채묵의 효과적인 운용과 강렬한 필선의 다양한 구사를 통해 대간의 생동감을 극대화하는데 역점을 뒀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백두대간을 단적으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앞으로 특별히 무언가를 정해놓기보다는 내재된 것들을 표현하는 동시에 총체적으로 자연에 접근, 이를 표현해보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지난 5월 개인 부스전을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가졌기에 올해는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작업을 할 겁니다. 다만 단독 개인전을 서울에서 열지 못해 내년쯤 기회가 닿으면 ‘백두대간’ 등을 주제로 열어볼 계획을 잡고 있죠.”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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