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의 미학 반주 …오랜 시간 노력 필요하죠"
검색 입력폼
남도예술인

"절제의 미학 반주 …오랜 시간 노력 필요하죠"

[남도예술인]피아니스트 천현주
피아노 전공 시절 반주 매력…성신여대 대학원 반주과서 공부
빛소리오페라단 음악코치·광주대 음악학과서 후학 양성 매진
"세심히 배려하는 자세 필요…후배 본보기가 되고 싶다" 밝혀

천현주 피아니스트가 ‘클라빌레 정기연주회’에서 반주를 선보이고 있다.
솔리스트의 독창회, 화려한 오페라와 합창, 발레 공연 등…. 모든 무대 뒤편에는 반주자가 있다. 무대 앞에 나서지 않는 특성상 그동안 반주자의 중요성은 크게 조명되지 않았다. 반주는 노래와 악기 연주를 보충하거나 그에 종속된 ‘백그라운드’ 역할이라고 인식하는 경향도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무대에서 반주자의 역할은 그 공연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고 할 정도로 매우 크다. 훌륭하고 능숙한 반주자는 연주자의 실수를 만회할 뿐 아니라 공연을 더욱 완성도 있고 빛나게 만들 수 있다.

피아니스트 천현주씨는 광주에서 전문 반주자로 30여년을 무대에 섰으며 지금도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베테랑’ 연주자다. 성악이나 기악 독창회는 물론 오페라, 합창, 무용까지 다양한 장르의 셀 수 없이 많은 공연에 함께했다.

그가 무대 맨 앞에서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일반 피아니스트가 아닌 반주자의 길을 택하게 된 계기는 전남대에 재학 중이던 시절로 돌아간다. 예술대학 음악학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그는 주변에 피아노보다 기악, 성악 등을 전공한 친구들이 더 많아 콩쿠르나 오디션 등에서 자주 반주를 해주곤 했다. 혼자 피아노곡을 연습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앙상블 연주가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반주 무대에 자주 서면서 우연한 기회를 얻어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비상임 단원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반주자의 길을 걷게 됐다.

졸업 후 같은 피아노 전공생들은 피아노로 이어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그는 전문적인 반주 공부를 향한 열망에 가득 찼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성신여대 대학원에 국내 최초 반주과가 생긴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는 하던 활동을 모두 멈추고 약 한 달간을 준비해 대학원에 입학했다.

유·스퀘어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움트클래식 정기연주회’를 마치고 공연자들과 함께한 천현주 피아니스트.(왼쪽 세번째)
공연을 마치고 어머니와 함께한 천현주 피아니스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반주과가 따로 없었고, 반주자에 대한 인식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어요. 피아노 치는 사람이 반주도 하면 된다고 여기던 때였죠. 전문 대학원이 생긴다는 소식에 ‘내 길은 이거다’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반주과 입성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외국과 같은 커리큘럼이 도입돼 공부 양은 엄청났지만, 그토록 하고 싶던 공부였기에 어느 때보다 푹 빠져 학구열을 불태웠다. 피아노를 전공한 학부생 시절에는 단 한번도 느끼지 못한 경험이었다. 피아노 공부뿐 아니라 성악, 성악 딕션, 기악 등 다양한 장르의 반주를 위해서 필요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기악 반주라면 현악기와 관악기에 맞는 피아노 소리가 있고, 발레, 합창도 마찬가지죠. 대학원 때 가장 즐겁게 공부를 했어요. 앙상블의 매력도 많이 느꼈죠. 졸업할 때쯤에는 교수님께 ‘반주를 못하겠어요’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오히려 공부를 하면서 뭔지 조금 알고 나니 더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러자 교수님이 ‘그럼 됐다. 지금부터 더 열심히 해라’라고 말씀해주셨죠.”

30여년을 반주자로 무대에 서 왔지만 그에게 반주는 늘 새롭고 긴장되는 일이다. 같은 곡이라도 누구와 연주하고 함께 호흡을 맞추느냐에 따라 새로운 레퍼토리가 되기도 한다. 사람마다 호흡과 그에 따른 템포, 곡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반주자는 피아노에서 손을 완전히 떼는 순간까지 공부를 놓을 수 없다고 한다. 성악가는 성악 레퍼토리, 기악은 자신의 악기 레퍼토리만 알면 되지만 반주자는 그 모든 분야의 레퍼토리를 다 알아야 한다.

“단순히 연주만 연습하는 게 아니라 성악곡이면 어떤 곡인지, 오페라면 어떤 내용인지 등 많은 것을 꼼꼼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가사 내용과 흐름을 알아야 연주자와 함께 호흡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가 말하는 반주자의 자질은 늘 상대의 소리와 반응에 감각을 열어두고 세심히 관찰하고 배려하는 자세다. 무엇보다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 연주자와 함께 호흡하며 연주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아무래도 반주자는 함께하는 작업이 많다 보니 스스로를 부각시킨다는 것보다, 조화롭게 맞춰간다는 걸 알아야 해요. 마치 연기자들이 호흡을 맞추는 것처럼요. 하지만 그렇다고 내 것을 아예 없애서도 안 되죠. 솔리스트에게 무조건 다 맞춰주는 게 좋은 반주자는 아니거든요. 앙상블을 함께 만들어가는 매력에 재미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반주자의 길을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현주 피아니스트는 “반주자는 스스로를 부각시키기보다 조화롭게 맞춰간다는 게 중요하다”면서 “후배들이나 반주자의 꿈을 꾸는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사단법인 빛소리오페라단 음악코치로 20여년째 활동 중이다. 운동선수들의 뒤에 감독과 코치가 있듯이 연주자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함께 연습하고 코칭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지난해 광주대 음악학과가 없어지기 전까지 외래교수로 강단에 서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그의 스케줄은 매달 연주 일정으로 꽉 차있다. 얼마 전 광주문화재단 ‘목요콘서트’에서 연주를 마쳤다. 오는 20일에는 젊은 성악가 모임인 ‘움트’의 네번째 정기공연에 반주자로 선다. 반주가 어렵고 중요한 곡들로 레퍼토리가 짜여 하루하루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반주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그는 ‘삶 자체’라고 대답했다. 평소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반주자에 대해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 인터뷰에 응했다고 한다. 또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이런 길도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도 내비쳤다.

끝으로 그는 학생들과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로 계속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외국에서는 반주자를 ‘콜라보레이티드 피아니스트’(collaborated pianist)라고 칭합니다. 솔리스트나 어떤 연주에 종속된 게 아닌 듀오 개념의 연주자라는 의미죠. 지금은 국내에서도 반주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꼈는데요. 앞으로 좋은 연주자들과 많은 경험을 쌓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늘려서 음악적 재산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또 후배들이나 반주자의 꿈을 꾸는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이 연주자로서의 꿈입니다.”
김다경 기자 alsqlsdl94@gwangnam.co.kr         김다경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