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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최혜원씨는 “초심을 잃지 말고 실력에 앞서 바른 인성을 갖춘 예인으로 성장하라는 문명자 명창의 가르침을 새기며 국악을 널리 알리고 보존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
아홉 살 어린 나이로 연행 시간 3시간 30분에 달하는 판소리 ‘흥보가’를 완창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던 소리꾼 최혜원씨가 그다.
최씨는 올해 중앙대 예술대학 전통예술학부에 입학한 스무 살 새내기다. 지난 22일 광주북구청소년수련관 공연장에서 일곱번째 개인발표회 ‘수궁가’를 성황리에 끝마쳤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단가 ‘백구가’와 판소리 ‘수궁가’를 가야금병창으로 들려줬다. 지난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바쁜 와중에도 발표회 곡을 틈틈이 연습해왔으며, 대학 수시 과정이 끝난 11월부터는 매일 발표회 준비에 매진했다.
발표회 초입에 선보인 ‘백구가’는 전원에 묻혀 사는 대장부의 마음을 노래하는 곡이다. 본곡으로 들려준 ‘수궁가’는 토끼가 자라의 꾐에 빠져 용궁에 가 죽을 뻔했다가 기지를 발휘해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를 노래한 판소리다.
이번에 연행한 ‘수궁가’를 비롯해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까지 완창을 마친 그에게 판소리 다섯바탕 중 ‘적벽가’ 한 마당만 남았다. 내년 말 또는 내후년에 적벽가 발표회를 계획 중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수궁가와 심청가에 등장하는 ‘범피중류’다. 부를 때마다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범피중류는 수궁가에도, 심청가에도 나오는데, 심청이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로 향하는 대목이에요. 그 대목을 부를 때면 가슴이 벅차오르죠. ‘범피중류 둥덩실 떠나간다 망망한 창해이며 탕탕헌 물결이라 백빈주 갈매기는 홍요안으로 날아들고 삼강의 기러기는 한수로 날아든다’ 이렇게 시작하는 가사도 정말 아름다워요.”
최씨는 유치원 방과후 수업에서 국악기를 접한 것을 계기로 자연스레 국악을 시작했다. 가야금과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인정받았다. 부모님은 그가 스스로 길을 찾기를 바랐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적성을 찾도록 이끌어줬다.
처음에는 집 근처에 경기남도민요를 가르치는 연유국악원에서 국악을 배웠다. 1년 반쯤 시간이 흘러 경기민요를 계속하기 위해 수도권으로 올라가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에 빠졌고, 경기민요 이춘희 명창으로부터 ‘예향 광주에서 태어난 만큼 판소리와 가야금병창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받으면서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병창 보유자인 문명자 명창을 찾아가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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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광주전통문화관 서석당에서 선보인 ‘흥부가 완창발표회’ 무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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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원씨가 문명자 명창이 이끄는 예술단별밭가얏고의 ‘문화재 맥을 잇다’ 일곱번째 공연에서 소리를 선보이고 있다. |
“어머니가 함께 합숙하며 끼니를 챙겨주셔서 힘든 와중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지만, 친구들과의 약속을 자주 못 지킬 때면 정말 속상했어요. 레슨이 길어져 약속 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문명자 선생님은 목소리 상태가 좋으면 두세 시간씩 붙잡고 예습, 복습까지 이어가셨어요. 덕분에 힘들었지만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죠.”
물론 행복한 순간도 많았다. ‘제8회 뫼솔 전국국악경연대회’ 초등부 가야금병창부문 대상, ‘제8회 화순적벽 전국학생국악경연대회’ 중등부 가야금병창부문 대상, ‘제5회 장성 전국국악경연대회’ 고등부 가야금병창부문 대상, ‘제23회 대한민국 빛고을 기악대제전’ 고등부 가야금병창부문 대상 등 수많은 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대상을 거머쥐었다.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주신 가야금 뒷판에 새겨진 ‘부심’(父心)이라는 글자는 아직도 그의 마음을 울린다. 그 가야금으로 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았을 때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던 순간의 기억은 평생 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오른 무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광주예술의전당(구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10회 한중수교 청소년 문화교류’ 무대에 섰을 때다. 넓고 웅장한 무대에서 작은 목소리로 판소리 ‘흥보가’ 중 ‘돈타령’ 대목을 솔로로 불렀던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린 나이에 전통 판소리를 중국 청소년들에게 들려줄 수 있었다는 자부심을 느껴서다.
또 여섯 번의 개인 발표회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해준 값진 경험이다. 준비 과정은 힘들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이 곁에서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셨기에 가능했던 무대다.
“무대 위에서 관객들이 박수와 추임새로 응원해주실 때마다 울컥했어요. 어떤 분들은 제 소리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훔치시기도 했죠. 매 공연이 끝날 때마다 감사함과 뭉클함이 몰려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대 뒤에서 스스로에게 ‘잘했다’ 말하며 펑펑 울었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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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개인발표회 ‘심청가’ 공연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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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10회 한중수교 청소년 문화교류 예술제’ 무대에 선 모습. |
또 국악과 관련된 작곡, 편곡, 장단, 무용, 무대연출 등 다양한 장르를 부지런히 배우며 폭넓은 경험을 쌓아갈 계획이다.
“초등부부터 중등부를 거쳐 고등부까지 각종 대회에 나갔던 제가 이제 대학부와 일반부 소속이 됐다는 게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대학생 그룹으로 활동하는 팀에 합류해 보컬과 연주 파트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이끌거나, 연출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꿈꾸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부모님과 스승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할 거예요.”
그가 말하는 전통국악의 가장 큰 매력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울림’이다. K팝을 비롯한 현대 음악은 화려하고 빠르게 변화하지만, 국악은 세월이 지나도 우리 민족의 정서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음악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되는 것. 그가 말하는 진정한 국악의 힘이다.
“판소리의 장단, 가야금의 떨림, 병창의 섬세한 멜로디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죠. 무엇보다 국악은 자연스러운 숨소리와 감정까지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무대에서 소리로 제 마음을 전할 때, 관객과 하나 되는 그 순간이 정말 좋습니다. K팝의 화려함도 멋지지만, 국악은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감동을 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무 살 소리꾼. 다섯 살 때 만난 국악은 이제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최혜원씨는 초심을 잃지 말고 실력에 앞서 바른 인성을 갖춘 예인으로 성장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새기며 국악을 널리 알리고 보존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국악은 단순한 음악장르를 넘어 선조들의 삶과 철학,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대중이 이러한 국악을 낯설지 않게 느끼도록 노력할 겁니다. 전통적인 국악의 소리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제 소리를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국악인으로서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김다경 기자 alsqlsdl94@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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