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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여수에서 부산을 경유 일본까지 화물과 여객을 실어나른 화객선이 하포항에 정박해 있다(광양군마을유래지)상단부 사진은 하포항 선착장 |
17일 여수광양항만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5월 한국해양대학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발간한 이 책은 여수와 광양의 형성과 발달, 여수항, 광양 하포, 삼일항, 광양항 제철부두,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 광양항의 미래 등 총 7장 280쪽으로 구성됐다.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내용은 현재 컨테이너부두가 자리잡고 있는 광양하포항의 역사 부문이다.
광양군지(1983년)와 광양군마을유래지(1988년)에는 광양하포항이 1912년 개항돼 여수·부산과 일본에까지 이어지는 전남 동부 6군 해양교통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여수항이 개항되고 1930년 광려선(광주~여수 간 철도)과 1936년 익산~순천 간 전라선이 개통되면서 육상운송이 활발해져 1938년 폐항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역사서에는 1912년 하포항이 개항되고 당시 골약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가 도이리에서 이주해 왔으며, 1921년 하포공립보통학교가 개교되는 등 골약면 중심지 역할을 한 사실은 기술돼 있으나 하포항을 이용한 선박이나 화물, 운항구간, 선박 운항 시기 등 자세한 내용은 없다.
그런데 이번에 발간한 책에서 구전으로 전해오던 광양광산(금광)때문에 하포항이 개항됐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새로운 사료가 발견됐다.
조선총독부가 1925년 발행한 ‘조선 주요광산의 개황’이라는 책에서 ‘광양광산에서 채굴한 선광을 제련하기 위해 광양~하포 간에 궤도 운반을 한 뒤, 다시 우마차로 해안의 저장소로 운반 한 뒤 부선으로 본선에 옮겨 실어 나오시마 제련소에 광석을 매각한다’고 적시돼 있다.
또 1927년 8월 27일 자 경성일보에도 ‘광산 입구에서 부선에 광석을 싣고 2해리 떨어진 이름없는 섬에 저장했다가 300t 내외의 범선으로 나오시마 제련소로 수송한다’고 실려 있다. 1910년대 나오시마는 아시아 최대 금·은·동 생산지로, 일본의 미쓰비씨 머티리얼 제련소(종업원 860명)가 입주해 있던 섬이다.
광양광산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는 1910년께 발견돼 1915년 전후로 채굴되기 시작했으며, 1916년부터 소유권이 일본인에게 넘어가 1928년부터는 채광방식이 기계화로 발전하면서 다량의 금을 생산했다.
광양광산의 선광은 1930년 흥남제련소가 건립되자 나오시마 운송이 중단되고 흥남제련소로 수송해 금을 추출했다.
김성준 한국해양대교수는 “선광을 일본 나오사마로 운반해 판매한다는 내용이 기술된 조선총독부 책자가 1925년 발간인 것을 감안하면 그 이전부터 하포항에서 일본으로 직항 선박이 운항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현 항만공사 사장은 “이번 용역으로 하포항이 확실하게 광양광산에서 선광을 배로 흥남제련소가 건립되기 전까지 일본 나오시마로 수송한 사실이 밝혀져 큰 의미가 있다”며 “아직은 미미하지만 더 보완해 광양항 발달사를 제대로 정립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광양=김귀진 기자 lkkjin@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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