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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총명 허그맘허그인심리상담센터 광주무등점 원장 |
“나는 왜 나를 구원해 줄 대상을 찾는가?” 상담학에서 인격적 성숙이란 전능한 타자에게 자신의 삶을 내맡기는 의존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현실적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율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정치 영역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한 시대의 집단 심리는 그 시대가 바라는 리더의 형상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은 커다란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바로 ‘카리스마의 종말’과 ‘기능적 실용성’이라는 새로운 안식처의 발견이다.
과거 한국 정치를 지배했던 핵심 기제는 상담학의 대표적 개념인 ‘정치적 전이(Political Transference)’였다. ‘전이’란 유아기에 부모에게 느꼈던 무조건적인 의존성, 구원 기대, 혹은 두려움의 감정을 성인이 된 후 사회적 대상에게 투사하는 현상이다. 김영삼,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거인들의 시대는 이러한 전이가 가장 강력하게 작용했던 시절이었다. 민주화라는 거대한 역사적 과제 앞에서 대중은 지도자에게 ‘아버지의 아키타입(Archetype)’을 투사했다.
김영삼의 결단력 있는 카리스마와 김대중의 철학적·선각자적 카리스마는 국민들에게 감정적 일치감과 시대적 안전감을 제공했다. 대중은 지도자의 정체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거대 서사의 일부가 되는 것에서 안정감을 찾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이 강렬한 전이의 고리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메타포나 이념이 개인의 팍팍한 삶과 생존을 구원해 주지 못한다는 환멸이 지속적으로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정치적 등장은 카리스마적 전이의 마지막 불꽃이자 그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며 종말의 정점이었다. ‘거침없는 권력 수사’와 ‘공정과 상식’이라는 강력한 카리스마적 상징성에 대중은 다시 한번 구원자 전이를 일시적으로 투사했다. 하지만 그 껍질과 이미지의 상징이 가리고 있던 구체적인 국정 운영 능력, 즉 디테일한 지식과 행정적 기능성의 부재가 드러나면서 대중의 감정적 거품은 급격히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카리스마라는 껍데기만으로는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대중이 체득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껍질의 추악함과 무능함을 실시간으로 우리 눈으로 동시에 목격하고 있다.
반면, 이재명이라는 인물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는 전형적인 ‘과업 중심적 신뢰’에 기반 한다. 거대한 이념이나 영웅적 카리스마보다는 ‘지자체장으로서 보여준 구체적 행정 성과’, ‘문제를 짚어내고 집행하는 실무적 능력’, ‘잘 알고 일 잘하는 똑똑함’에 대중이 반응하는 현상은 정치가 감정적 전이의 대상에서 ‘기능적 도구’로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시대변화에 따라 이제 대중은 더 이상 지도자에게 심리적 부모가 돼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내 삶의 실제적인 문제(주거, 물가, 산업 전환 등)를 정확한 지식과 유능함으로 해결해 줄 ‘실력 있는 전문가’를 요구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국무회의가 실질적인 실력의 실시간 확인이 아닌가.
정신분석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은 인간이 성숙해짐에 따라 타인을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는 ‘자기대상(Selfobject)’으로 사용하는 단계에서, 타인의 인격과 기능을 개별적으로 인정하는 타자화 단계로 이행한다고 보았다.
우리 국민의 정치적 심리 역시 ‘전지전능한 카리스마를 지닌 영웅’을 열망하던 자기대상화 단계에서 벗어나, 정치를 실질적인 과업을 맡기는 계약적·기능적 관계로 바라보는 성숙의 단계에 들어섰다. 이제 시대가 바라는 리더는 거대한 상징에 갇힌 영웅이 아니다. 똑똑하고, 정교하게 알고, 현장의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능한 행정가이자 정치인’이다.
카리스마의 시대가 저물고 ‘능력’이라는 합리적 안식처가 새로이 자리 잡은 지금, 우리는 비로소 정치를 통한 집단적 성숙의 길목에 서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총명 gn@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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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2 (수) 08: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