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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진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책임활동가 |
마을에는 쓰레기와 자원순환, 주차 부족과 보행 안전, 아이들의 돌봄 공간, 어르신의 고립 등 다양한 현안이 존재한다. 처음엔 그저 개별적인 ‘생활 불편’으로 보였던 것들이, 찬찬히 들여다보면 환경·복지·안전·경제·공동체라는 굵직한 문제들과 촘촘히 얽혀 있었다. 기후위기나 인구감소 같은 거시적 문제 역시 결국 폭염에 취약한 이웃, 비어 가는 골목, 부족한 돌봄의 모습으로 우리 일상에 나타난다. 역으로 말하면,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 바로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마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출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지속가능한 자치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자치계획은 주민들의 소중한 의견이 일회성 행사나 민원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준다. 마을이 함께 나아갈 공동의 지향점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한 번의 회의로 휘발되기 십상이다. 담당자가 바뀌거나 지원사업이 끝나면 활동이 멈추고, 같은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소모적인 상황도 반복된다. 지속가능한 자치계획은 바로 이런 단절을 막고, 주민들이 뜻을 모아 정한 방향을 ‘마을의 굳건한 약속’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과정이다.
이 약속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서류 작업이 아니다. 외부의 시선으로 섣불리 문제를 규정하는 대신, 철저히 주민의 경험과 목소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알토리’(알아가기·토론·정리)다. 마을의 사람과 자원을 알아가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이를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예컨대 골목길 주차 문제를 두고도 누군가는 주차 공간 부족을, 누군가는 보행 안전을 걱정한다. 이때 무작정 시설부터 설치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언제 어디서 위험을 느끼는지 함께 이야기해야 마을의 진짜 현실에 맞는 계획이 나온다.
물론 처음 세운 계획이 완벽할 수는 없다. 부족한 점을 짚고 보완해 나가는 ‘정반합’의 숙의 과정이 필수적인 이유다. 소수의 의견만 반영된 것은 아닌지,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인지 끊임없이 묻고 방향을 수정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마을의 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과정이다. 계획 수립 이후에는 반드시 실천하고 그 결과를 돌아보는 ‘계실평’(계획·실천·평가)이 뒤따라야 한다. 골목길 안전 활동 이후 주민들이 실제로 안전을 체감하는지, 예상치 못한 불편은 없었는지 확인하고 이를 다음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일상의 문제를 파악하는 ‘알토리’, 부족함을 채우는 ‘정반합’, 활동의 생명력을 이어가는 ‘계실평’이 맞물려 돌아갈 때, 자치계획은 비로소 텍스트를 넘어 지속적인 실천으로 살아 숨 쉬게 된다.
이러한 마을의 활동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라는 렌즈를 통과할 때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마을의 돌봄 활동은 ‘건강과 복지(SDGs 3번 목표)’로, 자원순환은 ‘책임 있는 생산과 소비(SDGs 12번 목표)’로, 안전한 골목길은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SDGs 11번 목표)’로 연결된다. 우리의 소박한 일상적 실천이 어떤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지 확인하는 순간이다.
최근 지역사회에서 주목받는 ‘대자보(대중교통·자전거·보행)’ 중심의 전환도 이를 잘 보여준다. 걷기 편하고 안전한 골목을 만들고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을 일상화하려는 마을의 노력은, 단순한 교통 편의를 넘어 기후행동(SDGs 13번 목표)과 모든 시민의 안전한 이동권을 보장하는 불평등 감소(SDGs 10번 목표)라는 거대한 목표와 직접 맞닿아 있다. 주민들의 주도로 시작된 작은 변화들이 기후위기라는 지구적 난제를 풀어가는 가장 구체적이고 강력한 실천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 마을을 배워가는 활동가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게 됐다. 활동가는 정답을 쥐고 주민을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주민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스스로 마을의 답을 찾아가도록 그 과정을 촘촘히 연결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지구적인 시선에서 마을의 실천까지.” 이제 이 문장은 내게 더 이상 모호한 구호가 아니다.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이웃과 함께 찾아 실천하고, 그것이 다음 세대의 삶까지 이어지도록 계획하고 평가하는 것, 주민들이 함께 세운 작은 계획과 실천이 하나둘 모일 때 비로소 거대한 지구적 변화도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라 믿는다.
조수진 gn@gwangnam.co.kr
조수진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7.22 (수) 2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