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서 현실로 나온 ‘지정생존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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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칼럼

드라마서 현실로 나온 ‘지정생존자’1

김상훈 뉴미디어문화본부장

[김상훈의 세상읽기] #1.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는 미국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에 대비, 행사장과 멀리 떨어진 안전시설에서 대기하고 있는 대통령직 승계가 가능한 사람을 말한다.

이 제도는 1947년 도입됐다. 당시 소련과 핵무기 확장경쟁이 과열된 상황에서 혹시 모를 핵 공격에 정부가 무너져 내릴 때를 대비해 ‘대통령직 계승법’을 개정해 이같은 내용을 담은 것이다.

지정생존자로는 보통 계승권을 가진 국무위원들 중 한 명이 지명된다. 대통령이나 다른 주요 인사들과 공간적으로 격리되고 안전이 확보된 비밀 장소에서 대통령급 경호를 받으며 공식 행사가 끝날 때까지 대기한다고 한다. 통상 연두 교서나 국정 연설, 대통령 취임식 등 대통령과 부통령 등 고위급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행사가 있을 때에만 지명된다.

지정 생존자는 부통령 하원 의장 등 본인보다 높은 계승권을 가진 이들이 수행 불능 상태가 될 때에만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목표물이 될 가능성이 높은 부통령, 하원의장,국무부 장관 등 매스컴에 자주 노출되는 미 정계의 핵심 인물보다는 대개 서열이 낮고 대중에게 덜 알려진 각료 중 1명이 지정생존자로 선택된다.

공식기록에 나타난 지정생존자는 1984년 1월 25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진행할 당시 지정했던 새뮤얼 피어스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이다.

조시 부시 전 대통령은 9·11테러 발생 9일후인 2001년 9월 20일에 열린 미국의회 연설에서 당시 상황이 대단히 심각했기 때문이었는지 이례적으로 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 등 2명을 지정 생존자로 지명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정생존자 제도가 없고 대신 권한대행 제도가 있다.



#2.

‘60일, 지정생존자’는 CJ ENM의 종합 버라이어티 채널인 tvN이 지난 2019년 7월1일~8월 20일까지 16부작으로 방영한 드라마다.

대통령의 국정 연설이 열리던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이 갑작스러운 폭탄 테러 공격을 받아 붕괴된 후 국무위원 중 유일하게 생존한 환경부장관이 승계 서열에 따라, 60일간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정돼 테러의 배후를 찾아내고 가족과 국가를 지키려 노력하는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배우 지진희, 배종옥, 허준호,최재성,이기영, 김규리 등이 출연했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북한 잠수함이 남한의 영해에 들어왔다며 전시 상태나 다름없는 ‘데프콘 1’ 발령을 주장하며 대통령 권한대행과 갈등을 빚다 군지휘권을 박탈당한 합참의장의 ‘참 군인의 모습’이다.

그는 비상계엄하에서 육군 참모총장의 쿠데타 기도를 빠르게 진압한다. 체포된 육참총장이 “권한대행에게 모욕 당한 게 억울하지도 않냐”는 분노 섞인 질문에 “자국민에게 총을 겨눈 ‘우리 군의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를 내가 반복할 거라 믿었나?”라고 일갈하며 큰 울림을 주었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 코리아 조사에서 최고 6.2%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이 드라마는 미국의 정치 스릴러 드라마인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의 리메이크 작이다.

데이비드 구겐하임이 프로듀서를 맡고 유명배우 키퍼서덜랜드 등이 출연한 ‘지정생존자’는 지난 2016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총 3부작 53화(1부 21화, 2부 22화, 3부 10화)에 걸쳐 ABC방송국과 넷플릭스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다. 내용은 미국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이었던 톰 커크먼 (키퍼 서덜랜드 분)이 대통령의 국정연설 당시 지정생존자로 대기하다가, 초유의 폭발 테러로 자신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직 계승자가 사망해 갑작스레 미국 대통령직에 오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3.

드라마에서 나옴직한 이런 이야기가 현실이 됐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국회의사당과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무장군인과 경찰 병력을 대거 동원했기 때문이다.

특히 동원된 군과 경찰은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원들의 계엄해제 결의까지 막기 위해 의원들의 국회 출입까지 봉쇄해 내란혐의 등을 받는 등 시끄럽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직무가 정지되는 탄핵소추를 당하며 현재 한덕수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하지만 한 권한대행도 계엄 당시 국무회의 참석자로 내란죄 혐의로 고발된 상태여서 지위가 불안한 상태다.

그래서 기획재정부 장관, 교육부 장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외교부장관, 통일부 장관 등 권한대행 다음 순위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이 안타깝다.
김상훈 기자 goart001@gwangnam.co.kr         김상훈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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