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홍승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
전라도와 광주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고 무슨 죽을죄를 지었기에 이러는가.
나는 군대 생활을 서울에서 했는데 부대원 중 전라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재경지구(在京地區) 행사 부대였던 관계로 군기가 셌고 거의 매일 구타에 시달렸다. 부대 선임 가운데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이름이 있다. 내가 신병 때 그는 말년 병장이었고 무식했던 쌍팔년도에 군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 장성의 계급은 5계급이 있다고 했다. “준장, 소장, 중장, 대장 위에 병장”
하루 일과가 끝나고 육군 중령인 부대장 이하 간부들이 퇴근하고 나면 말년 병장 P는 부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전라도 사람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는 전라도 중에서도 전라남도, 광주를 특히 싫어했다. 의외로 전라북도 출신에게는 관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그는 전라도 광주 사투리가 너무 싫다고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면 광주 사투리는 촌스럽고 천박하다고 야유했다. 어떤 날은 나의 말투를 서울 말씨로 고치고 말겠다면서 한 손에 철모를 들고 내게 일부러 계속 말을 시켰고 사투리가 나오면 그때마다 피식거리며 철모로 머리를 내려쳤다. 그렇게 맞고 난 다음날은 피멍이 얼굴 쪽으로 내려와서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피가 나곤 했다. 나는 그렇게 단지 전라도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제대할 때까지 괴롭힘을 당했다.
일본에서는 재일교포를 자이니치(在日)라고 부른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고 나서도 여러 가지 형편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적응하며 살아남아야 했다. 요즘 한국과 일본의 젊은 애들 사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의 재일교포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대단히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배운 것도 없고 자본도 없는 한국인들이 일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뒷골목에서 장사를 하거나, 빠칭코를 운영하는 야쿠자가 되거나, 건설현장에서 온갖 허드레 일을 하면서 연명하는 정도였다. 마치 우리나라 경제 발전기때 지역에 일자리가 없어서 무조건 서울로 올라간 후 밑바닥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전라도 사람들의 선택과 같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지금까지 긴 세월동안 재일교포와 그 2,3세들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에도 요즘 일본 사회에서는 의사가 되거나, 성공한 사업가 또는 유명 회사의 간부 직원이 된 사람, 예술가 등 각계각층에서 잘 풀린 이들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솔직히 여전히 일본사회에서 자이니치는 주류가 아니다. 그래서 부모나 조부모의 국적을 숨기고 일본 사람처럼 살아가는 자이니치들도 많다. 한때 광주나 전라도 출신들이 본적을 바꾸어 수도권으로 옮기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아마 같은 이유가 아니었겠는가.
일본은 야구의 인기가 엄청난 나라다. 꿈의 무대라는 일본 고시엔 (甲子園)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한 한국계 교토 국제고 교가의 한글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시골의 작은 고등학교 교가의 가사치고는 너무나 웅대하고 힘찬 내용이다. 지금으로부터 78년 전 말할 수 없이 어렵던 타국살이를 하면서도 2세들의 교육을 위해 교포들이 돈을 모아 세운 학교다. 지금은 교포 아이들보다 일본 학생이 훨씬 많이 다니는 학교이지만 이 학교의 근본을 한국인들이 만들었고 그동안 숱한 폐교의 위기 속에서도 피와 땀으로 명맥을 이어왔던 한국계 학교다. 무려 4000여 개의 고교 야구팀이 출전하는 일본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 쉽게 믿기지 않는 사실에 재일교포들은 물론 국내 야구팬들도 감격했었다. 고시엔 대회의 특징은 경기 후 승리한 팀의 교가를 연주하고 중계방송국인 NHK가 전국에 생방송을 한다. 고시엔 대회의 마지막 결승전이 끝난 후 일본 열도 전역에 울려 퍼진 교토 국제고의 한글로 된 한국어 교가를 들으면서 자이니치들은 한없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운동장이 좁아서 내야 수비 위주로만 연습을 해야 했고 야구공이 닳아 테이프를 붙여서 다시 사용할 정도로 만성적인 예산 부족으로 운영되던 시골 고등학교가 고시엔에서 우승을 한 것은 한마디로 기적 같은 일이다. 야구광인 일본의 내 친구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냥 기적이다.”
세상에 자기가 태어날 곳을 정하고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전라도와 자이니치를 떠올릴 때마다 어찌 그리 입장이 닮았는지 그저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한국과 일본 주류 사회로의 진입 장벽이 된다면 이제는 제발 그 유치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